아내의 뱃속에 딸이 들어서고부터 담배를 많이 줄일 수 있었다. 아내가 있는 모든 곳이 '금연구역'이 되다 보니 퇴근 후에는 거의 담배를 입에 물 수가 없었다. 자동차 역시 금연 구역이었다. 아내가 타고 있지 않더라도 말이다. 한 가치만 피우더라도 냄새가 차 안에 배어 버리기 때문이었는데, 아내는 그 냄새만 맡아도 질색을 했다. 그때부터 차량용 재떨이는 동전을 담아두는 '동전통'이 되었다.
딸이 세상에 나온 뒤에도 금연 구역은 계속 지켜졌다. 아내의 담배 냄새 기피증은 더 심해져, 난 퇴근한 이후에는 몸에 배어있는 담배 냄새를 없애느라 애를 써야 했다. 담배 냄새를 풀풀 날리면서 집에 들어설 때면 아내의 표정이 곱지 않았다. 집 안에서 담벼 연기를 내뿜는 것도 아닌데...때론 아내가 참으로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내의 표정이 곱지 않았던 이유는 '금연'에 성공한 이후에야 알 수 있었다. 담배를 피울 때는 담배 냄새가 구수하다 느꼈는 데, 끊고 난 뒤 골초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아보니 결코 그렇지 않았다. 악취였다. 특히 담배를 방금 피운 사람에게서 나는 냄새는 훨씬 더 심각했다. 아내는 갓난아이였던 딸에게 그 지독한 냄새를 맡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딸이 태어난 이후에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심해지면서 담배를 피운다는 것에 대해서 회의를 갖게 되었다. 내가 피우는 담배 한 가치가 옆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부터는 그 회의가 점점 깊어졌다.
금연을 결심할 당시에 언론을 통해서 담배의 해악에 대한 대대적인 홍보가 이루어지고 있었단는 것도 금연을 결심하는 데 도움을 줬다. 그 해악 중에 담배를 피우는 사람보다 옆에 있는 사람이 피해가 더 크다는 내용도 있었다.
2001년 9월에 '금연'을 결심했다고 아내와 딸에게 선언하기까지는 이러한 과정이 있었다. 담배를 입에 물고 있다는 사실이 날아가는 담배 연기처럼 허무하다고 느꼈을 때 금연을 선언한 것이다.
담배 피우는 꿈을 꾸기도
결국 난 금연에 성공했다. 2001년 9월부터 2006년 9월까지 담배를 한 가치도 피우지 않았다. 3년 동안 피우지 않았으니, 그 정도면 자신 있게 '금연에 성공했다'고 밝힐 만했다. 담배를 끊었다고 하자, 많은 사람들이 "담배를 끊게 된 이유?“를 물었다. 그럴 때면 난 그저 '갑자기 담배가 싫어졌다'고 대답했다. 담배를 끊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자면, 시간이 많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담배의 유혹을 이겨냈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는데, 그럴 때는 담배를 끊으려 마음먹은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성실하게 답변을 했다.
난 담배의 유혹을 운동으로 극복했다. 식사 후 속이 더부룩할 때도 운동을 했고 어려운 일에 봉착했을 때도 운동을 했다. 운동이라고 해봐야 특별한 것은 없다. 무조건 뛰는 것이다. 마을 옆 개천가를 참 많이도 뛰어다녔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오고 땀으로 옷이 범벅이 될 때까지 뛰었다.
어려움도 있었는데, 가장 큰 것은 금단현상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져서 주변 사람들에게 신경질을 부리는 것이었다. ‘이러다가 좋은 사람 다 잃게 되는 게 아닌가’하는 위기감이 밀려 오기도 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한가치만 피워볼까'라는 유혹이 밀려왔다. 그러나 한가치가 열 가치가 되고 열 가치가 한 갑이 되어 다시 금연에 실패하게 된다는 것을 잘 알기에 그럴 수 없었다. 또다시 금연에 실패한다면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도저히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이었다.
담배를 피우는 꿈을 꾸다가 깨는 일도 있었다. 이럴 때는 금단현상이 생각보다 심하다는 생각에 혼자 웃기도 했다. 군대를 제대한 후 몇 년간을 다시 군대에 가는 악몽(?)을 꾸다가 깨어나서 안도의 한숨을 내쉰 적이 있는데, 그것과 비슷했다. 꿈에서 담배를 실컷 피우면서 '금연'에 실패한 것을 자책하다가 깨어나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이다. 꿈이었다고, 실패하지 않았다고.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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