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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지구 여행하다 잠시 쉬고 싶다면

by 사이먼 리 2022.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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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언제부터 내 집처럼 편해진 것일까?

 

꿈의학교라는 당시만 해도 듣보잡이었던 특이한 학교에 빠져 있었던 즈음인 것으로 기억한다. ‘아이들 꿈을, 아이들이 스스로 찾게 해 준다는 학교라는 말만 믿고 무조건 찾아 나선 학교.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쓰기는 더 어려웠다.

 

머리가 복잡하면 걷는 습관대로, 그때도 난 무조건 걸었다. 그렇게 걷다가 발길 닿는 대로 찾아 온 게 안양 예술공원에 있는 작은 박물관이라는 카페다.

 

신기하게도 걷다보면 첫 글자 첫 단락이 떠올랐다. 한 번 이라도 글을 써 봤다면 첫 글자 쓰기의 어려움을 알 것이다.

 

카페에 자리를 잡자마자 난 까먹을 새라 잽싸게 썼다. 생각이 생각을 불러 들여 몇 시간 뒤에는 글을 완성 할 수 있었다.

 

귀에 익숙한 조용한 음악이 글쓰기 노가다의 고단함을 덜어줬다. 고개만 돌리면 눈에 들어오는 둥그스름한 산등성이가 눈에 덕지덕지 낀 피로를 씻어 주었다. 때 맞춰 말을 걸어주는 친절함 넘치는 주인 부부가 있어 을 놓치지 않고 기력을 충전하며 글을 쓸 수 있어, 정말 좋았다.

 

한여름 무더위는 관악산을 스쳐가는 바람이 식혀줬다. 선풍기, 에어컨을 이용해 인간이 만들어 낸 바람과는 격이 다른 시원함이다.

 

겨울에는 장작 난로가 언 몸을 위로해 준다. 빨간 불꽃이 주는 포근함에 안기면 엷은 졸음이 밀려오기도 한다. 그 때마다 난 거부하지 않고 잠시 그 졸음에 몸을 맡겼다.

 

이렇게 2년 여를 보내자 신기하게도 <날아라 꿈의학교>(2017, 오마이북)라는 책이 세상에 나왔다.

 

그 뒤 1 8개월 만에 난 <소년들의 섬>(2018, 도서출판 생각나눔)이란 책도 펴냈다.

수용소에 갇힌 소년들의 아픈 이야기라, 꿈의학교에 관한 이야기를 쓸 때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한편을 쓰고 나면 몸에 남은 기력이 모두 빠져나갔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관악산 자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이 카페가 없었다면 난 더한 고통 속에서 글을 썼을 것이다.

 

책을 출판 할 때마다 난 달라고 하지 않는데도 주책스럽게 저자 싸인까지 해서 주인 부부에게 선물했다. 그들은 고맙게도, 굉장한 것을 받는 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까지 숙여 깍듯하게 예의를 차리면서 책을 받았다.

 

그 책은 카페 장식의 하나가 되어 지금도 책꽂이에서 나를 반긴다.

 

난 오늘도 카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다. 산을 에워싼 어둠살이 빨리 집에 가라고 재촉하지만, 내 마음은 이곳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나를 반기는 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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