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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엄마한테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by 사이먼 리 2022.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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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이서등 작가

“정말 그랬어,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고, 엄마한테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던 거야.”

 

그 시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이 말이 새어 나왔고, 기억이란 놈은 과거로 달음박질을 쳤다. 심순덕 님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라는 시다.

 

상고머리 중학생 시절 어느 날이었다.

 

졸린 눈을 비비고 시계를 보니 작은 바늘이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차! 눈물이 핑 돌았다. 중간고사 첫날이었다. 시험공부를 하다가 졸음에 겨워 어머니에게 새벽에 깨워달라 부탁하고는 꿀잠을 잔 터였다.

 

버스가 마을에 도착하는 시간은 715. 나는 15분 안에 교복을 입고 책가방을 챙겨 버스 에 올라야 했다.

 

한 숟가락이라도 먹고 가야지.”

 

세수도 하지 않은 채 뛰어나가려는 나를 어머니의 하이톤(high tone)이 붙잡았다.

 

평소 같으면 밥을 물에 말아서 마시기라도 했겠지만, 그날은 사정이 달랐다. 중간고사 첫날이라 마음도 급했지만, 그보다는 깨워주지 않은 어머니가 원망스러워서 숟가락을 들고 싶지 않았다.

 

난 독이 잔뜩 오른 목소리로 '싫어'라고 소리치고는 버스 정류장으로 뛰었고, 잠시 후 버스에 올랐다. 멀리서 어머니가 도시락을 들고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어머니를 기다리느라 버스가 출발하지 않았다.

 

‘버스 운전이나 잘할 것이지...웬 쓸데없는 오지랖.’

 

이렇게 속으로 빈정거리며, 그러거나 말거나 저 도시락을 절대 받지 않으리라마음먹었다.

 

어머니는 내가 서 있는 창가로 다가와 도시락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키가 아주 작은 어머니는 까치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골이 잔뜩 난 중학생은 창문을 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머니가 포기하고 얼른 집으로 돌아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때.

 

"학생 빨리 문 열고 도시락 받아"

 

나지막하지만 꽤 힘 있는 목소리. 오지랖 넓은 기사 아저씨였다. 그래도 내가 문을 열지 않자 보다 못했는지 옆에 있던 여학생이 창문을 대신 열어 주었다.

 

그 순간 왜 그렇게도 얼굴이 화끈거렸는지. 아마도 엄마 때문에 많은 사람 앞에서 창피를 당했다 느꼈던 것 같다.

 

나는 어머니의 손에서 도시락을 낚아채듯 빼앗았다. 그런 다음 버스 밖으로 멀리 내동댕이치려고 힘껏 몸을 뒤로 젖혔다.

 

창피함을 모면하고 싶은 마음과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뒤엉킨 복잡한 심리 상태에서 나온 어처구니없는 행동이었다.

 

"야, 인마! 지금 뭐하는 짓이야!“

 

오지랖 넓은 버스 기사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그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 나는 도시락을 손에 든 채 잠시 멍해져 어머니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안타까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도대체 그 순간 어떤 기분이셨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 눈빛만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았다.

 

아슬아슬한 상황은 버스가 출발하면서 자연스레 정리가 됐다.

 

"학생, 어머니 마음 아프게 하지 말고 잘해 드려. 언젠가는 잘해 드리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

 

하차하는 중이었다. 버스 기사의 충고가 가슴에 꽂혀 무척이나 아팠지만, 그보다는 고마움이 더 커 아픈 척도 할 수 없었다.

 

만약에 버스 기사가 나를 말려주지 않았더라면 어쩔뻔했나 아찔했다. 난 아주 수많은 밤을 뜬눈으로 괴로워했을 것이고, 어머니는 더 많은 밤을 그리 보냈을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그나마 7시에 일어날 수 있었던 것도 어머니가 버르장머리 없는 아들의 짜증을 다 받으며 깨워준 덕분이었다.

 

엄마한테는 절대 그러면 안 되는 것인데, 그때는 엄마한테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엄마는 뭐든지 다 받아 주고, 뭐든지 다 감싸 안아 주었으니까.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심순덕 님의 시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마지막 단락이다. 엄마의 어려움을 미처 헤아려 주지 못한 미안함과 아쉬움, 그리고 그리움까지 담겨 있는 시의 화룡점정이다.

 

이 단락이 내 눈에는 ! 엄마한테는 그러면 안되는 것이었습니다로 읽혔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을 썩여도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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