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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글이 격문보다 힘이 센 이유

by 사이먼 리 2022. 5. 6.

 

삽화 이서등 작가

[내 글에 날개를 달자] 사납게 몰아붙이면 설득은커녕 반감만

 

 

담배는 정말 나쁜 것이에요. 기호식품이니 그것도 먹는 것이라고요? 천만에요. 담배는 독약일 뿐입니다. 대마초보다 더 해로울지도 몰라요. 절대 피우면 안 돼요.”

 

이렇게 외치고 싶은 적이 있었다. 담배를 끊고 5년 정도 지난 뒤였다. 하고 싶은 말을 숨기지 못하는 가벼운 성격인지라 저 말은 툭 하면 내 혀를 타고 세상에 던져졌다.

 

특히 술자리에서 많이 나왔다. 담배를 피워야 할 이유를 백 가지 정도는 댈 수 있는 말발 센 골초라도 끼어 있으면 그야말로 격론이 벌어졌다. 뒤 끝도 좋지 않아 흥분해서 서로 얼굴이 빨개지기 일쑤였다. 시원하게 결론이 나지 않으니 말을 하면 할수록 기력만 떨어질 뿐, 소득은 없었다.

 

이렇게 격론을 벌인 뒤 집으로 돌아온 어느 날 난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은 상태에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담배 옹호론자 손톱 밑을 송곳으로 찌를 듯한 사나운 글이 나올 터였다.

 

하지만 내 손가락을 통해 나온 글은 사납지 않았고, 격하지도 않았다. 초고는 비판과 비난이 가득한 격문에 가까운 글이었지만 퇴고를 거쳐 완성된 글은 아주 부드러웠다. 글을 쓰면서 마음이 누그러졌고, 생각도 논리적으로 변한 덕분이었다.

 

금연을 권하는 글이지만 난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고 결코 주장하지 않았다. 흡연 애호가를 비판하지도 않았다. 왜 담배를 끊기로 결심했고 어떻게 끊었는지, 금연 이후의 삶이 어떤 모습인지를 그저 수기처럼 담담하게 풀어 놓았을 뿐이다.

 

이 부드러운 글이 격문보다 더 힘이 세다는 사실을 아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전적으로 내 글에 힘입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시나브로 금연이 우리 사회 대세가 되어갔다. 관공서를 시작으로 금연구역이 늘어나더니 식당 카페에 이어 당구장까지 금연구역이 됐다. 담뱃갑에 암세포를 그려 넣을 정도의 강력한 금연 정책도 시행됐다. 이런 흐름을 만드는데 내 글이 응원단 역할 정도는 했으리라 생각한다.

 

독자들 관심을 끌었다는 것도 글쓴이로서는 정말 기분 좋은 일이다. 많이 읽혔고, 방송 작가 눈에도 띄어 텔레비전에 출연해 금연 비법을 소개하는 경이로운 일도 경험했다. 이 일이 강렬한 담배의 유혹을 물리치는 힘이 되어 주기도 했다. 전 국민이 보는 공영방송에서 금연에 성공했다 장담했으니, 어떻게 담배를 다시 입에 물 수 있었겠는가. 그 덕분에 난 20년 넘게 담배 피우지 않는 삶을 즐기고 있다.

 

만약 비난과 비판만 가득 찬 격문을 썼다면 어땠을까? 잠시 속은 후련했겠지만 많이 읽히지는 못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울림을 주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담배 옹호론자들 반발심만 키워 악성 댓글만 줄줄이 붙었을지도 모른다.

 

방송 출연 이후에도 난 금연에 관한 글을 몇 편 더 썼다. 모두 금연 경험을 소개한 잔잔한 글이었다. 독자 눈을 확 끌 만한 새로움이나 충격적인 대목이 없는데도 독자들 관심은 뜨거웠다. 그 글을 읽고 금연을 결심하거나 성공한 이도 있을법한데, 아쉽게도 확인할 길이 없다.

글을 써서 대중에게 공개하는 행위는 세상에 대한 프러포즈다. 소통해보자는 제안인 것이다. 그저 들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쓰는 글도 있고 주장을 펼치기 위해 쓰는 글도 있고, 세상의 불합리와 싸우고 싶어 쓰는 글도 있는데, 모두 기본은 상호 이해와 신뢰를 기본으로 하는 소통이다. 그러니 되도록 부드러운 게 좋다.

 

특히 주장을 펼치거나 세상의 불합리와 싸우기 위한 글일수록 차분하고 부드러운 게 좋다고 본다. 독자를 설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납게 몰아붙이면 설득은커녕 반감만 키울 가능성이 크다. 기억하자, 글로 세상과 싸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프러포즈하듯 부드럽게 독자에게 다가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음은 금연에 관해 쓴 글.

 

 

 

                                                                        <5전 6기, 결국 금연에 성공했다>

 

 

전 세계가 9.11 테러로 들썩일 때 우리 가족은 다른 문제로 술렁였다. 독한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더군다나 별로 성실하지도 않은 ‘의지박약’ 가장의 '금연 선언’ 때문이었다.

 

아내는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듯한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4살 딸은 아빠의 선언이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엄마의 표정과 말투를 흉내 냈다.

 

"정말 할 수 있을까! 이번에도 실패하는 거 아니야. 욕심부리지 말고 서서히 줄여나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또 실패하면 창피하잖아."

 

"아빠 정말 할 수 있어? 이번에는 정말 할 거야?"

 

이런 김빠지는 반응에 난 항변을 할 수도, 변명을 할 수도 없었다. 한두 차례 그런 게 아닌 탓이었다. 5번 이상 금연 선언을 했지만, 번번이 실패만 하고 있었다.

 

처음 금연을 선언한 것은 결혼 직후다. 아내는 유난히 담배 연기를 싫어했다. 그 이유가 그저 담배를 피우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인 줄만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비염'이라는 질병 때문이었다. 비염은 호흡기 질환이라 담배 연기와는 상극이다. 그때부터 난 '금연'을 결심했다.

 

딸이 태어난 뒤에는 금연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담배 냄새를 풀풀 풍기며 집에 들어서는 날 느껴지는 아내의 서늘한 눈초리가 부담스러운 것도 금연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아내의 표정이 곱지 않았던 이유는 '금연'에 성공한 이후에야 알 수 있었다. 담배를 피울 때는 담배 냄새가 구수한 것 같았는데, 결코 그렇지 않았다. 악취였다. 특히 담배를 방금 피운 사람에게서 나는 냄새가 더 지독했다. 아내는 갓난아기 딸에게 그 지독한 냄새를 맡게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금연이라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밥 먹고 난 뒤 담배를 물지 않으면 왠지 속이 더부룩했다. 걱정거리가 생기면 나도 모르게 담배를 찾았다.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술자리. 술만 한잔 들어가면 담배의 유혹을 뿌리치기 정말 힘겨웠다.

 

주변 사람 대부분이 지독한 '애연가'라는 사실 또한 나를 힘들게 했다. 마지못해서, 끊기가 힘들어서 피우는 사람들이 아니라 담배를 끊을 생각이 아예 없는 이들이었다.

 

"얼마나 더 산다고 그 좋은 담배를 끊겠다는 건지."

"스트레스 왕창 받는 게 담배피우는 것보다 건강에 더 해롭다고 하던데."

 

이런 식이었다. 담배를 절대로 끊지 말아야 할 이유를 백 가지 정도는 줄줄 꿰는 사람들이 내 주변을 겹겹이 둘러싸고 있었다. 심지어 권하는 담배를 받지 않자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던데"라고 협박(?)한 사람도 있다.

 

이런 말에 굴복해, 유혹을 이기지 못해...난 결심 3일을 못 넘기고 담배를 입에 물었다.

 

실패를 거듭했지만, 그래도 담배 피우는 양이 조금씩 줄어든 소득은 있었다. '담배를 끊다가 실패하면 도리어 피우는 양이 증가한다'며 훼방을 놓은 이도 있지만, 최소한 내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다.

 

담배 피우는 꿈을 꾸기도

 

그러나 이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2001년 9월에 난 금연에 성공했다. 그때부터 20년 넘게 담배를 한 가치도 피우지 않았으니, 자신 있게 '금연에 성공했다' 할만하다.

 

주변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담배를 끊게 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난 그저 '갑자기 담배가 싫어졌다'고 대답한다. 담배를 끊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면 너무 길기 때문이다.

 

"어떻게 담배의 유혹을 이겨냈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하는데, 이럴 때는 좀 장황하지만 설명을 한다. 담배를 끊으려고 마음먹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난 담배의 유혹을 뜀박질로 극복했다. 식사 후 속이 더부룩할 때도 뛰었고 고민되는 일이 생겨도 뛰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땀으로 옷이 범벅이 될 때까지 뛰었다.

 

금단현상 때문에 예민해져서 주변 사람들을 신경질적으로 대하는 어려움도 겪었다. 그럴 때면 '한가치만 피워볼까'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한가치가 열 가치가 되고 열 가치가 한 갑이 되어 다시 금연에 실패하게 되라라는 사실을 잘 알기에 그럴 수 없었다. 또다시 금연에 실패한다면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도저히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이었다.

 

담배 피우는 꿈을 꾸며 실패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리다가 깰 때는 금단현상의 지독함에 몸서리를 쳤다. 현실이 아닌 꿈이었다고, 그러니 실패한 게 아니라는 안도감에 한숨과 함께 웃음에 새어 나오기도 했다. 군대를 제대한 후 몇 년간을 다시 군대에 가는 악몽(?)을 꾸다가 깨어나서 안도의 한숨을 내쉰 적이 있는데, 그 기분과 비슷했다.

 

담배를 끊은 지 20년이 넘은 지금, '내가 담배를 피운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그 시절이 아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