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에 날개를 달자⓶] 브레인스토밍
아주 오래전 술과 관련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어째서 쓰게 됐는지는 흐릿한 기억 어딘가에 남겨졌을 뿐 분명치 않다. 누군가의 부탁을 받은 것도 같고, 그저 쓰고 싶어 썼던 것도 같다. 하지만 기억 속에 분명하게 새겨진 한 가지. 그것은 첫 글자 떼기가 무척이나 힘겨웠다는 사실이다.
술과의 인연이 ‘별로’라는 게 첫 글자 떼기를 어렵게 한 이유다. 소주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시뻘게지고 가슴까지 두근거리다 보니 술과 도저히 친해질 수 없었다. 이런 내가 술에 관한 글을 쓴다는 게 사실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맞춤한 글감이 쉽게 떠오를 리 없었다.
첫 글자를 쓰기까지 잠 못 이루는 밤이 계속됐다. 그 시간이 헛되지 않았는지 한 가지 방법이 혼란스러운 머리를 비집고 나왔다.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이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글쓰기(김지노 지음, 지상사, 2009년 4월20일)’ 라는 책에서 발견한 방법이다.
브레인스토밍은 혼자 할 수도 있고 여럿이 함께 할 수도 있다. 글자 그대로 뇌 속에 폭풍을 일으켜, 무의식 속에 잠자고 있는 모든 생각을 깨워서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여러 사람이 할 때는 하나의 주제를 정해 서로 이야기하면서 아이디어를 이끌어내면 된다.
토론할 때는 누군가 제시한 의견에 대해 함부로 이러쿵저러쿵하면 안 된다. 비난이나 섣부른 평가 역시 금물이다. 창조적 생각을 짓누르기 때문이다. 아무리 엉뚱하고 우스꽝스러운 아이디어라도 들어줘야 하고 토론 결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렇게 자유롭게 상상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에서 나온 생각을 모아 함께 검토하면서 주제에 가장 적합한 아이디어로 다듬어나가면 된다.
나는 강의실에서 수많은 이들에게 이 방법으로 글을 쓰게 했고, 대부분 성공했다.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게 하고 다소 엉뚱한 말을 해도 타박하는 이가 없으니 브레인스토밍만 하면 강의실 분위기가 봄 햇살이 비춘 듯 환해졌다.
이런 분위기 덕분인지 브레인스토밍만 마치면 백지 앞에서 난감해하던 많은 이들이 자신 있게 글을 써냈다. 많은 이들 중에는 초등학생도 있고, 70대 어르신도 있다. 채 30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그럴듯한 한편을 완성하는 놀라움을 선물한 이도 있다.
혼자 할 때는 주제를 하나 정해 놓고 어린 시절 추억에서부터 어디선가 주워들은 이야기까지 모든 기억을 총동원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 된다. 주제와 관련한 자료를 떠들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동안 난 이 방법으로 많은 글을 써 왔다.
주제가 ‘술’이었을 때에도 직접 겪은 경험을 비롯해 머릿속에 있는 술과 연관된 모든 정보를 끄집어냈다. 술과 나의 인연에 대해 사색했고, 수십 년을 거슬러 어린 시절의 나와 대화를 나눴다. 음주와 관련한 다른 이들의 갖가지 에피소드 등, 술에 대한 정보 찾기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 과정을 되풀이하다 보니 머릿속에서 실낱같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술 못 마시는 술꾼’은 이런 과정을 거쳐 완성한 글이다.
<술 못 마시는 '술꾼'>
"술잔이 역기야, 네가 장미란(역도선수)이냐고?"
술집에 가면 친구들한테 으레 듣는 핀잔이다. 술잔을 비우지 않고 계속 잔만 들었다 놓았다 하는 탓이다. 보는 사람 눈에는 갑갑할 만하다.
술은 내 인생의 아킬레스건이다. 너무 잘 마셔서 그런 게 아니라 너무 못 마셔서 그렇다. 그렇다고 술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난 술을 좋아하고 술에 대한 관심도 많은 편이다. ‘모태솔로’가 바람둥이보다 사실은 연애에 더 관심이 많은 것과 같은 이치다.
난 삼겹살을 안주 삼아 마시는 소주를 좋아한다. 비 오는 날 파전과 함께 마시면 일품인 막걸리도 좋아하고, 한 번에 쭉 들이켜야 제맛인 시원한 맥주도 좋아한다. 음악과 함께하면 더 감미로운 와인도 좋아한다.
이보다는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한다. 술 한 잔씩 홀짝거리며 이야기하는 시간이 소름 끼치게 좋다. ‘툭’ 하고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상대가 술자리에 있으면 더 바랄 게 없다. 호프집에서 500cc 맥주잔을 부딪치며 "위하여, 위하여"하는 활기찬 분위기도 즐기는 편이다.
이런 내가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억울한 일이다. 종교적인 신념이나 개인적인 각오가 있어 절제하는 것이었다면 난 일찌감치 '파계(破戒)'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게 아니다. 내가 술을 못 마시는 이유는 단 하나, 내 몸이 술을 허락하지 않아서다.
소주 한 잔만 마시면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다. 얼굴뿐만 아니라 옷으로 가려져 있는 다른 신체 부위도 함께 달아오른다. 두 잔 정도 들어가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멈추지 않고 계속 마시면 숨이 차서 헉헉거리게 된다. 사정이 이러니 사회생활(대인관계)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어떤 모임에 가든 술을 잘 마셔야 분위기를 이끄는 중심인물이 되는데, 난 술을 못하다 보니 늘 주변 인물일 수밖에 없었다. 아예 스스로 발길을 끊은 모임도 여러 곳이다.
술자리에 끼어 있는 자체가 고역인 경우가 많았다. 어려운 자리면 특히 더 그렇다. 술잔이 다시 내게로 되돌아오는 게 두려워 남에게 권하지도 못한다. 맨정신이다 보니 스스럼없이 농담을 던지며 친해지기도 어렵다.
한때, 술을 잘 마시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적도 있다. 뭐 특별한 노력은 아니고, 술을 이기지 못해 토하면서도 자꾸 마셔대는 것이다. 토하면서도 자꾸 마시다 보면 어느 순간 술이 이태백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강건해진다는 낭설을 철석같이 믿었던 탓이다.
그때는 술에 취해서 전철을 타고 집에 오다가 자주 곯아떨어졌다. 막차를 탔다가 잠이든 뒤, 누군가 흔드는 기척을 느끼고 눈을 뜨면 집하고 아주 먼 종착역인 경우가 많았다. 그때의 그 낭패감과 황당함이란…. 언젠가는 전철 안에서 잠이 들었다가 지갑까지 들어있는 손가방을 잃어버리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 이런 일을 숱하게 겪으면서도 난 악착같이 마셔댔다.
그때는 남한테, 특히 처음 만나는 상대한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술 좀 하시죠?"하면 "네, 좀 합니다"하고 호기 있게 대답했다. 검은 피부에 다부져 보이는 몸. 외모가 받쳐주는 덕에 내 거짓말은 그럭저럭 잘 통했다. 누가 봐도 술깨나 마실 것 같은 생김새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가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속담이 그 당시 내게 꼭 들어맞는 말이었다. 술꾼도 아닌 게 술꾼인 척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하룻저녁 호기 때문에 사나흘씩 고생하기 일쑤였고, 때론 약의 힘을 빌려야 간신히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이렇게 '개고생'을 하면서도 내 허풍은 계속됐다. 그 일을 겪기 전까지.
"괜찮으세요, 괜찮으세요, 구급차 불러 드릴까요?"
이 소리를 듣고 일어나보니 화장실 바닥이었다. 서른을 넘긴 지 얼마 안 됐을 때 겪은 일이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던 중이었다. 볼썽사납게 소변을 보다가 그만 기절해 버린 것이다. 화장실에 가기 전에 마신 술은 고작 맥주 700cc 정도였다.
쓰러지기 전, 숨이 가쁘고 어지럽다가 사물이 점점 흐려졌다. 나를 깨워준 사람한테 물으니 소변을 보다 말고 갑자기 고꾸라졌다고 한다. 그는 "머리를 바닥에 세게 부딪쳤는데 아프지 않냐"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때부터 난 술과의 인연에 대해서 생각이란 것을 하게 되었다. ‘경각심’을 갖게 된 것이다.
곰곰이 되짚어 보니 술과는 처음 만날 때부터 그리 좋은 인연이 아니었다. 다섯 살 때쯤 막걸리 한 대접을 마시고 경을 친 일이 있다. 그날은 술, 떡, 삼겹살, 부침개 같은 맛난 음식이 잔칫날만큼이나 지천인 '바심(타작의 사투리)'하는 날이었다. 목이 말라서 물인 줄 알고 벌컥벌컥 마신 게 '막걸리'였다.
결과는 보나 마나. 다섯 살짜리가 막걸리를 한 대접이나 마셨으니 걸음인들 제대로 걸었을까. 그만 집 앞 '도랑'에 굴러떨어져 정신을 잃고 말았다. 가을 가뭄이 들었던 때라 '도랑'에 물이 없어 익사를 면할 수 있었던 게, 다행이라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참으로 위험한 순간이었다.
중학교 3학년 여름 방학 때 친구들과 천렵을 하면서 호기심에 술을 마시고 초주검이 된 적도 있다. 취하면 어떤 기분인지 알고 싶어 소주를 병나발 불었다. 얼마만큼 마셨는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많이 마신 줄 알았는데, 나중에 친구들한테 들은 바로는 겨우 2홉들이 소주 반병 정도였다.
친구들과 헤어져 집에 온 다음부터 취기가 돌기 시작했다. 숨이 차서 헐떡거리다가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새벽에 메스꺼운 기분이 들어 깨어보니 천정이 빙빙 돌고 속이 뒤집혔다. 결국, 의사의 도움을 받고서야 뒤집힌 속을 간신히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나마 술을 마신 장소에서 취해 쓰러지지 않고 집에 와서 쓰러진 게 다행이었다.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면 친구들이 나를 업고 오느라 고생깨나 했을 게 분명하다. 미처 취할 새도 없이 굉장히 빨리 마신 덕(?)에 집까지 무사히 내 발로 걸어올 수 있었다.
술로 인해 벌어진 웃지 못할 에피소드는 이 밖에도 부지기수다. 대부분 죽지 않을 만큼 고생한 기억이다.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객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고, 못 마신다고 하면 될 것을 공연히 자존심 세우고 객기 부리다가 하게 된 ‘개고생’이라는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내리게 된 결론은 '허세 부리지 말고 솔직하게 살자'는 것이다. 그 뒤로는 "술 좋아하십니까?" 하고 누군가 물으면 "네 좋아하지만, 많이 마시지는 못합니다" 하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 이후 주변 사람들은 나를 술 못 마시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됐다. 덕분에 역도선수 '장미란'이란 별호를 얻으면서, 동시에 ‘장미란 주법’ 창시자가 됐다.
그 뒤로 난 술 못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억지로 술을 마시며 살 때보다 몸도 편하고 머리도 맑아 좋기는 하지만, 한편으론 아쉽기도 하다. 이젠 누군가와 밤새 술 마시며 이야기하는 낭만을 누릴 수 없다. 이야기가 술술 통하는 사람과 취하도록 마시며 떠들어 대는 것만으로도 삶의 활력소를 얻을 수 있는데, 그걸 못하니 가끔은 답답하다.
그래도 이젠 못 마시는 술을 억지로 마시는 미련한 짓은 하지 않으련다. 잘 마시는 척도 하지 않을 것이고. 노력해서 잘 할 수 있는 게 아니란 것을, 굳이 노력해서까지 잘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서다. 할 수 없으면 할 수 없다고, 하기 싫으면 하기 싫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그뿐. 그것이 인생의 아킬레스건, 즉 치명적 약점이 될 수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되고.
술을 잘하지는 못하지만, 난 누가 뭐래도 술꾼이다. 비 오는 날 파전과 함께 마시면 일품인 막걸리를 좋아하고, 감미로운 음악을 들으며 마셔야 제격인 와인을 좋아하는 로맨틱한 '술꾼'이다. 난 이렇게 술 못 마시는 술꾼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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