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에 날개를 달자④-2] 한 놈만 패라, 무조건 한 놈만 패라
‘이렇게 썼다면 더 좋았을 것을.’
이런 아쉬움이 남는 글이 있다. 바로 이 글이다.
위기일발! 물에 빠진 여섯 살 아들 한가한 토요일 오후, 그동안 여섯 살 아들에게 남발한 공약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아들 손을 뿌리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자전거 타는 법 가르쳐 주기로 한 약속, 장난감 소방차 사주기로 한 약속이 몇 달째 묵혀 있다. 환한 대낮에 집에 온 아빠 모습이 낮선 듯 아들 녀석은 '웬일이냐'는 표정이다. 평소 같으면 '아빠'하며 두 팔을 벌리고 달려오던 녀석이 "아빠 왜 이렇게 빨리 왔어?"하고는 장난감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호연아 아빠가 오늘 자전거 가르쳐 줄게, 공원에 가서 물놀이도 시켜주고...음~오는 길에 소방차도 사줄게." 호연이 녀석은 그제야 뛰어와서 품에 안기며 "아빠 정말이야"하며 환하게 웃는다. 호연이는 소매 없는 녹색 티셔츠에 녹색 반바지를, 난 청바지에 파란색 반팔 티셔츠를 입었다. 배낭엔 카메라와 책 한 권 지갑, 수첩을 챙겼다. 함께 거울 앞에 서 보니 환상적인 '부자 커플'이고 내 모습은 나무랄 데 없는 '좋은 아빠 컨셉'이다. 호연이는 보조 바퀴가 달린 자전거를 타고, 난 그 옆에서 보디가드 처럼 호위하며 걸었다. 목적지는 집 근처에 있는 '안양예술공원'이다. 안양천 지천변 만안교 부근에서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형형색색의 수영복을 입고 신나게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엄마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한담을 나누며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다. 이곳은 물이불면 가끔씩 임시 야외 수영장이 되는 장소다. 호연이 눈이 반짝였다. "아빠 물놀이해도 돼?" "응 그래 물놀이부터 하자." "물에 들어가도 돼? 여벌옷 가져왔어?" "안 가져왔어, 그냥 들어가서 놀아 아빠가 말려줄게." 호연이는 낯선 아이들과 금세 친해졌다. 오랜 친구를 만난 듯 서로 물장구를 치며 노는 모습을 지켜보다 잠시 옛날 생각에 잠겼다. 예닐곱 살, 딱 호연이 만한 나이 때, 누런 흙탕물이 흐르는 수리조합에 들어가 물장구를 치며 더위를 식히곤 했다. 동네 형들은 깊은 곳에 들어가 수영을 했고 내 또래 아이들은 가장자리에서 텀벙거리며 놀았다. 난 호기심이 많았다. 궁금한 게 있으면 꼭 한번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형들이 수영을 하는 깊은 물이 궁금했다. 내 몸도 형들처럼 깊은 물에서 둥둥 뜰 수 있다고 자신했다. 형들이 있는 깊은 곳으로 한 발 내딛는 순간 몸이 밑으로 푹 가라앉았다. 발이 땅에 닿지가 않았다. 겁이 덜컥 났다. 허우적거리며 밖으로 나오려고 애썼지만 물은 나를 놓아 주지 않았다. 가라앉았다 떠오르기를 몇 차례, 힘이 점점 빠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정신이 가물가물 하며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여기까지 생각하다 문득 호연이가 어떻게 노는지 궁금해졌다. 그런데 호연이가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소매 없는 녹색 셔츠를 입고 있는 꼬마가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겁이 덜컥 났다. 그때, 녹색 셔츠를 입은 꼬마가 물위에 잠간 떠올랐다가 가라앉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난 직감적으로 호연이가 물에 빠져 익사 직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반사적으로 물에 뛰어들었다. 10m거리가 참 멀었다. 호연이는 힘이 빠졌는지 허우적거리지도 못하고 물속으로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 번쩍 안아 올리자 '콜록'하고 기침을 했다. 그 기침 소리가 희망의 종소리였다. 숨을 쉰다는 증거다. 물 밖으로 데리고 나왔는데 어떻게 응급조치를 해야 하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인공호흡을 해야 하나! 아냐 기침을 했으니까 그럴 필요는 없어, 그럼 가슴을 좀 주물러 줄까! 아냐아냐 그것도 아냐.' 머리에 하얀 물감을 뒤집어 쓴 듯, 도무지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호연이가 '으앙'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이렇게 반가운 울음소리가 또 있을까! 이제 됐다고 생각했다. 운다는 것은 숨을 제대로 쉬고, 긴장도 어느 정도 풀려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함께 놀던 아이들이 호연이 신발과 내가 메고 있던 배낭을 건져서 가져다주었다. 기특한 녀석들이다. 그제야 내가 배낭을 멘 채 물에 뛰어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배낭을 열어보니 카메라, 책, 지갑이 모두 젖어 있었다. 휴대폰도 물에 젖어 전원이 나갔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들이킨 물을 토해내기 위해,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헛구역질을 하는 호연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엄마들이 큰 수건으로 어깨를 덮어줬다. 그리고 자기 아들, 딸을 위해 준비한 과자와 물을 나누어 줬다. 호연이는 물을 한잔 마시고 과자를 씹으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여성들의 따뜻함과 섬세함, 준비성이 참으로 고마운 순간이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라 호연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금세 알아챘다. 이런 따뜻함과 섬세함이 우리 사회를 지켜주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난 아들과 놀아 주기로 마음먹고 집을 나서면서 겨우 카메라와 책 한권만 챙겼다. 물놀이를 시켜 준다고 하고선 여벌 옷 하나, 수건 하나 준비하지 않았다. 내게 필요한 물건만 챙기고 정작 호연이에게 필요한 물건은 하나도 준비하지 않은 것이다. 여자는 베이스캠프다. 생존과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고 필요하면 나누어 준다. 그리고 항상 그 자리에 있다. 남자는 여행객이다. 사람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대부분 생존에 꼭 필요한 물건만 가지고 다닌다. 그날 내 모습은 생존에 필요한 물건마저 챙기지 않은 준비성 없는 여행객이었고 호연이어깨에 큰 수건을 덮어 주고 물과 과자를 나누어준 엄마들은 '베이스캠프'였다. 경황이 없어 그 분들에게 인사도 제대로 못했다. 지면을 빌어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그 엄마들은 나와 호연이 에게 천사로 기억될 것이다. 여섯살 배기 아들을 물가에 내놓고 옛날 생각에 잠겨서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운명이 나와 호연이를 도와줬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만약 물에 빠져 익사 직전까지 갔던 기억이 없었다면, 호연이가 물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챌 수 없었을 것이다. 호연이 바로 옆에서 물장구치던 아이들도 호연이가 익사 직전이라는 절박한 상황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호연이보다 서너 살 나이가 많은 아이들이었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은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지 물놀이를 하는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난 먼발치에서 보고도 금방 알 수 있었다. 경험이 준 소중한 '감각'이었다. 어린시절 나를 구해 준 사람은 나보다 나이가 다섯 살 많은 동네 형이었다. 정신이 아득해질 때 쯤 내 몸이 물위로 솟구쳐 올랐다. 내가 허우적거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번쩍 안아 올린 것이다. 그 순간 '아 이제 살았구나' 생각하며 안도의 울음을 터뜨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이후 한동안 물가에 가지 못했다. 물에 대한 공포, 트라우마가 어린 나를 지배한 것이다. 그 이후 한참 만에야 물에 뜨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시간이 공포를 잊게 했고 과감하게 물에 뛰어들면서 난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었다. 아마 호연이가 물과 사투를 벌이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내 머릿속에 어린 시절 익사 직전까지 갔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 이 또한 운명이 도와준 것이라 생각한다. 호연이가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운명이 알려준 것이라고. 난 호연이에게 하루빨리 수영을 가르칠 계획이다. 이번엔 운명이 도와줘서 호연이를 내 손으로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호연이가 또다시 물에 빠진다면, 내가 그 자리에 있으리란 보장이 없다. 그래서 물에 뜨는 법을 하루빨리 가르칠 계획이다. 물에 빠져 죽지 않으려면 물과 친해져야 한다. 물과 함께 호흡하고 유연하게 춤출 수 있어야한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면 죽는다. 물을 잘 몰라서, 친하지 않아서 두려운 것이고 빠져나가려고 허우적거리는 것이다. 물은 그때를 놓치지 않고 발목을 잡아당겨서 가라앉히고 만다. 생각해 보니 세상 모든 일이 마찬가지다. 두려워서, 힘들어서 피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이 두렵고 힘들어지고 나중엔 수렁 속으로 빠지게 된다. 세상은 정면 돌파하는 사람에게 기회를 준다. 정면 돌파하려면 두려움을 극복해야 하고 그러려면 세상사와 유연하게 춤출 수 있어야 한다. 호연이가 수영을 배우면서 두려운 일, 힘든 일과 친해지는 법을 깨우치길 기대한다. |
아주 오래전, 지금은 나 보다도 키가 한 뼘이나 더 커버린 아들이 6살 때 겪은 일이다. 개울가에서 놀다가 익사 직전까지 간 일이 있었다. 난 그 일을 삶의 아찔했던 한 페이지로 기록했는데 두고두고 아쉬운 게 지나치게 장황하다는 점이었다. ‘더 쓰고 싶은 욕심을 버리고 주제와 맞닿은 부분만 썼으면 좋았을 것을’이란 후회가 들었지만, 이미 발표한 글이라 고칠 수없었다. 해서, 더 쓰고 싶은 욕심을 버리고 이 글을 주제 중심으로, 주제와 맞닿은 내용 만을 가지고 현재 시점으로 재구성 해 보았다.
윗글 내용 중 글자를 자빠뜨려 놓은 부분을 없앴다. 주제와 별다른 관련이 없는 부분이어서다. 또 마지막 부분도 덜어냈는데, 현재 시점으로 바꾸다 보니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고쳐놓고 보니 우선 글이 짧아져서 읽기가 수월하다. 주제와 맞닿지 않는 부분을 덜어내니 글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여섯 살 아들을 구한 아빠의 안도감’이 더 잘 드러난다.
글을 쓰다 보면 감정에 휘둘려서 또는 갑자기 무엇인가 떠올라 주제와 관련 없는 이야기를 덧붙이는 경우가 있다. 간혹 기발한 문장도 나오지만, 대부분은 군더더기다. 이럴 때는 과감하게 군더더기를 제거할 결단력이 필요하다. 이 글을 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교정 작업을 했더라며 지금처럼 다듬지 못했을 수도 있다. 글쓴이의 시선이 아닌 독자의 시각으로 봐야 글의 부족한 부분이 잘 보이는데, 글을 쓴 즈음에는 완벽한 독자의 시각을 갖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명심하자, 모든 글은 주제가 중심이라는 사실을. 주제와 관련이 없는 부분은 몸에 붙은 군살과 같다는 사실을.
다음은 교정글.
물에 빠진 여섯 살 아들과 물놀이 추억 한가한 토요일 오후, 여섯 살 아들에게 남발했던 공약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아들 손을 뿌리친 게 어디 한두 번이던가.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 주기로 한 약속, 장난감 소방차 사주기로 한 약속이 몇 달째 묵혀 있었다. 환한 대낮에 집에 온 아빠 모습이 영 낯선 듯 아들 녀석은 '웬일이냐'는 표정으로 빤히 쳐다봤다. '아빠'하며 두 팔을 벌리고 달려들던 녀석이었는데, 그날은 "아빠 왜 이렇게 빨리 왔어?"하고는 장난감만 만지작거렸다. "아빠가 오늘 자전거 가르쳐 줄게, 공원에 가서 물놀이도 하고...음~오는 길에 소방차도 사줄게." 녀석은 그제야 뛰어와서 품에 안기며 "아빠 정말이야"하며 환하게 웃었다. 호연이는 소매 없는 녹색 티셔츠에 녹색 반바지를, 난 청바지에 파란색 반 팔 티셔츠를 입었다. 배낭엔 카메라와 책 한 권 지갑, 수첩을 챙겼다. 함께 거울 앞에 서니 환상적인 부자 커플이고 내 모습은 나무랄 데 없는 '좋은 아빠'다. 호연이는 보조 바퀴가 달린 자전거를 탔고 난 그 옆을 마치 보디가드라도 되는 양 호위했다. 목적지는 집 근처에 있는 안양예술공원이었다. 안양천 지천 만안교 부근.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형형색색의 수영복을 입고 신나게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엄마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한담을 나누며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다. 호연이 눈이 반짝였다. "아빠 물놀이해도 돼?" "응 그래 물놀이부터 하자." "물에 들어가도 돼? 여벌옷 가져왔어?" "안 가져왔어, 그냥 들어가서 놀아 아빠가 말려줄게." 호연이는 낯선 아이들과 금세 친해졌다. 오랜 친구를 만난 듯 서로 물장구를 치며 노는 모습을 지켜보다 잠시 옛 생각에 잠겼다. 예닐곱 살, 딱 호연이만한 나이. 누런 흙탕물이 흐르는 수리조합에 들어가 물장구를 치며 더위를 식히곤 했었다. 동네 형들은 깊은 곳에 들어가 수영을 했고 내 또래 아이들은 가장자리에서 텀벙거리며 놀았다. 호기심이 많은 나는 형들이 수영을 하는 깊은 물이 궁금했다. 내 몸도 형들처럼 깊은 물에서 둥둥 뜰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다. 형들이 있는 깊은 곳으로 한 발 내딛는 순간 몸이 밑으로 푹 가라앉았다. 발이 땅에 닿지 않자 그제야 겁이 덜컥 났다. 허우적거리며 밖으로 나오려고 애를 썼지만 그럴수록 내 몸은 더 가라앉기만 했다. 누군가 물속에서 내 발목을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가라앉았다 떠오르기를 몇 차례. 기운이 점점 빠졌다. 정신이 가물가물하며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여기까지 생각하다 문득 호연이가 어떻게 노는지 궁금해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소매 없는 녹색 셔츠를 입고 있는 꼬마가 보이지 않았다. 혹시...밀려오는 공포. 등에 소름이 돋는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그때, 녹색 셔츠를 입은 꼬마가 물위에 잠간 떠올랐다가 가라앉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난 직감적으로 호연이가 내 어린 시절 그때 그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과 사투를 벌이던 그때. 난 반사적으로 물에 뛰어들었다. 불과 10m 거리인데 참 멀게만 느껴졌다. 호연이는 기력이 다했는지 허우적거리지도 못하고 물속으로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 번쩍 안아 올리자 '콜록'하고 기침을 했다. 희망의 종소리 같았다. 숨을 쉰다는 증거다. 물 밖으로 데리고 나왔는데 어떻게 응급조치를 해야 하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인공호흡을 해야 하나, 아냐 기침을 했으니까 그럴 필요는 없어, 그럼 가슴을 좀 주물러 줄까, 아냐 아냐 그것도 아냐.' 머릿속이 온통 백지였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호연이가 '으앙'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이렇게 반가운 울음소리가 또 있을까. 운다는 것은 숨을 제대로 쉬고, 긴장도 어느 정도 풀려 있다는 증거. 이제 됐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밀려왔다. 어린 아들을 물가에 내놓고는 추억에 잠겨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한동안 괴로웠다. 이게 다 이미 정해진 운명일 수도 있다는 지푸라기 같은 위안거리 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 괴로움은 더 크고 길었을 것이다. ‘내가 만약 물에 빠져 익사 직전까지 갔던 기억이 없었다면, 호연이가 물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눈치챌 수 있었을까’, 하는 그런. 즉 다행히 그런 기억이 내게 있었고 때마침 그 기억이 떠올라 아들을 구할 수 있었으니, 아들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린 사고, 또 내가 아들을 구한 일 모두 운명일 수도 있다는. 그러니 내가 물가에 아들을 내놓고 잠시 추억에 잠긴 것도 운명이라는. 어린 시절 나를 구해 준 이는 다섯 살 정도 위 동네 형이었다. 정신이 아득해질 즈음 내 몸이 물 위로 솟구쳐 올랐다. 내가 허우적거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번쩍 안아 올린 것이다. 그 순간 '아 이제 살았구나' 하며 안도의 울음을 터뜨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이후 한동안 물가에 가지 못하다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다시 물에 뛰어들 수 있었다. 이런 기억이 있어 호연이가 물을 무서워할까 걱정스러웠다. ‘잊은 것인지, 아니면 쉽게 극복한 것인지.’ 호연이는 다행스럽게 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물에 뜨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수영장에 데려가자 내가 언제 물에 삐져 허우적거렸냐는 듯 신나게 물장구를 치며 놀았다. 아들 녀석 키가 나하고 비슷할 즈음에 함께 안양천을 산책하다가 ‘기억나니?’하고 물은 적이 있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렸던 그 장소였다. 아들 녀석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정말 짜증스러웠어’라고 대답했다. ‘기특한 녀석.’ 잊은 게 아니었다. 아주 빠르게 그 공포를, 그 트라우마를 극복한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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