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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분 가라앉아 차분해지니 글이 술술

by 사이먼 리 2023. 1. 9.

삽화 이서등 작가

[내 글에 날개를 달자] 첫 글자 쓰지 못해 석고상이 된다면

 

목욕탕이나 식당 당구장 같은 데서 흡연자들이 맘대로 담배를 꼬나물던 그런 시절 이야기다.

 

아들과 함께 목욕탕을 다녀온 젊은 아빠는 부아를 삭이지 못해 씩씩거리며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처럼, 안방과 거실을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분풀이 대상이 필요했지만 집 안에는 그럴만한 게 없었다. 그때 그의 눈에 띈 것이 책상 위에 놓인 컴퓨터였다.

 

그래, 쓰자하는 마음으로 전원을 켰지만 어떻게 써야 할지, 무엇을 써야 할지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다. 특히 첫 글자, 첫 문장, 첫 단락이 문제였다.

 

그가 쓰고 싶은 것은 어린 아들과 함께 목욕탕에서 겪은 불쾌한 일이었다. 네 살 꼬마가 있는데도 거리낌 없이 니코틴, 일산화탄소, 타르 같은 공해 덩어리를 내뿜는 이들을 비난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친구들과 뒷담화하듯 마구 쏘아붙이거나 사나운 육두문자를 써서 비난할 수는 없었다. 뱉어냄과 동시에 어딘가로 사라지는 말과 달리 글이란 게 한번 써서 발표하게 되면 좀처럼 사라지지 않기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손짓이나 몸짓, 또는 대화 상대 같은 협력자가 있는 말과 달리 글이란 것은 사건 전후 사정은 물론 당시 감정까지 오롯이 단어만으로 전달해야 한다는 특성이 있는데, 이 또한 첫 글자를 쓰기 힘들게 만든 요인 중 하나였다.

 

첫 글자, 첫 문장이 꼬이게 되면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처럼 글이 내 의도와 달리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은 협력자가 있어 대화 중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가더라도 대화 상대 등의 협력자가 바로 잡아 줄 수가 있다.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라하면서 말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 하지만 글은 이 모든 것을 단어의 힘만으로 해결해야 한다. 글의 방향을 결정하는 첫 글자와 첫 문장이 대단히 중요한 이유다.

 

이런 점에서 글쓰기 최대의 난관은 역시 첫 글자로 비유되는 시작이라 말할 수 있다.

 

이십 년 넘게 글을 써온 지금도 첫 글자를 쓰지 못해 컴퓨터 앞에서 석고상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럴 때 극도의 나른함에 빠지지만, 대부분 정신을 가다듬고 첫 글자를 쓴다. 하지만 때론 여러 사이트를 뒤적이다가 피로해져서 글쓰기를 나중으로 미루거나, 포기할 때도 있다.

 

실패하지 않으려면 마음을 다잡고 첫 글자를 써야 하고 첫 단락을 완성해야 한다. 그러면 고민이 사라진다. 글 속에 빠져 현실 세계가 아닌 글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 때문이다. 특히 첫 문장이 흡족하면 그 이후에는 글이 술술 풀린다.

 

소개 글 <알몸으로 담배 피우는 당신은 '완전 비호감'>이 첫 글자를 쓰지 못해 컴퓨터 앞에서 돌부처가 될뻔했다가 새벽녘에야 간신히 첫 글자, 첫 문장을 완성한 케이스다.

 

첫 문장을 쉽사리 완성하지 못한 이유는 불쾌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컴퓨터 앞에 앉은 탓이었다.

 

첫 문장에서부터 사정없이 비난의 화살을 쏘아 대려 했는데 어쩐 일인지 그러고 나면 그 뒤의 글이 풀리지를 않았다. 그 이유는 몇 시간을 백지 앞에서 면벽 수도를 하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는데, 바로 글의 방향이 그 당시 상황과 맞지 않은 탓이었다.

 

생각해보니, 그들은 공개적으로 비난을 받을 만큼 큰 잘못을 한 게 아니었다. 그런 데서 공공연하게 담배를 피우던 시절이었다. 또 목욕탕 같은 데가 금연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았으니, 법을 위반한 것도 아니었다. 대중시설에서, 특히 어린이가 있는 데서 흡연하는 것은 공공예절에 어긋난다는 사회적 분위기 정도가 있었으니, 내가 지적할 수 있는 범위 또한 딱 그 정도였던 것이다.

 

불쾌한 감정을 추스른 뒤 냉정한 글쟁이의 마음으로 첫 글자를 쓰니 그 뒤부터는 글이 술술 풀렸다. 첫 문장은 독자들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글 말미에 불쾌했던 감정을 살짝 얹었다.

 

 

 

 

<알몸으로 담배 피우는 당신 '완전 비호감'>

 

 

우선 양말을 벗었다. 그다음 바지, 스웨터를 벗고 메리야스까지 벗었다. 이제 팬티만 벗으면 '알몸'이 된다.

 

'혹시! 연애소설에 등장하는 장면이 아닌가' 하는 야릇한 상상을 하는 분이 있을 터. 하지만 아니다. '아담'들만 득실거리는 남자 목욕탕에서 옷 벗는 순서를 나열한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목욕탕에서 옷 벗은 순서다.

 

설을 이틀 앞두고 동네 목욕탕에 갔다. 오래전부터 벼르고 또 벼른 일이다. 목욕탕 한번 가면서 웬 호들갑이냐고 타박하는 분도 있을 터. 맞다. 설 앞두고 목욕탕 가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행사라고 벼르고 또 벼르겠는가. 하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이틀 후면 다섯 살이 되는 아들 녀석과 함께였다.

 

아들 얻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도 아니고 남아선호사상가는 더더욱 아니지만,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일이 있었다. 아들 녀석 손잡고 목욕탕 가서 등 밀어주고 고사리 같은 손에 등 밀리는. 그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아들 녀석 손잡고 동네 목욕탕으로 향한 길이었다.

 

네 살배기 아들 녀석은 옷 벗을 생각은 하지 않고 목욕탕 옷장 열쇠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동그란 열쇠고리에 숫자가 쓰여 있는 게 제 딴에는 신기한 모양이었다.

 

"이제 옷 벗어야지?"

"아빠 이거(옷장 열쇠) 가져도 돼?"

"안돼 저 아저씨 거야(구두를 닦는 분)"

 

눈치 빠른 아저씨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열쇠 아저씨 거야 가져가면 안 돼~" 라며 거들었다. 그제야 아들 녀석은 열쇠를 놓고 두리번거리며 탈의실 '탐험'을 시작했다.

 

아무래도 옷을 벗고 싶지 않은 눈치였지만 그 또한 나를 닮아 목욕을 꺼리는 것이니, 양심상 나무랄 수는 없었다. 그래도 내친걸음이니 옷을 벗기지 않을 수 없어 반강제로 벗기고 목욕탕에 들어설 때쯤 아들과 함께 목욕탕에 온 것을 무척 후회하게 만드는 광경을 목격하게 됐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중년 남성이 그 비좁은 탈의실에서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는. 더 놀라운 것은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목욕탕이 사람들로 붐볐고, 아빠 손을 잡고 온 아이들도 꽤 많았는데도 누구 하나 문제 삼지 않았다.

 

'거 보소, 담배 좀 끕시다. 공공장소 아닙니까? 애들도 많은데...거 참' 이라는 말이 목까지 차 올라왔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 보내지는 못했다. 소심한 성격 탓이었다.

 

담배 연기가 무척 고통스러운지 아들 녀석은 연신 기침을 해 댔다. 선천적으로 호흡기가 약해 병원 문턱깨나 넘어본 녀석이었다. 목욕을 포기하고 그냥 나갈까 하다가 그래도 고사리 같은 아들 손에 등을 밀리는 호사는 누려야겠다는 욕심에 욕실 안으로 도망치는 길을 선택했다. 방금 지불한 목욕비가 아깝기도 했다.

 

아들 녀석 손을 재빨리 잡아끌고 욕실로 직행했지만 한번 언짢아진 기분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아들 녀석 몸에 붙은 묵은 때를 벗겨 주면서는 나갈 때는 제발 그분이 돌아갔기만을 바랐다.

 

그런데 아뿔싸, 목욕을 끝내고 욕실에서 나와보니 탈의실에서 두 명이나 담배를 피우는 게 아닌가.  그 둘은 조근조근 담소까지 나누고 있었다. 난 아들 녀석 손을 잡고 도망치듯 탈의실을 빠져나왔다. 집에 오니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벼르고 별러서 간 목욕탕이었다.

 

2년 전, 목욕탕에 발길을 끊은 것도 담배 때문이었다. 이 정도 세월이면 알아서 금연을 할 때도 되었건만. 세상이 내 뜻과는 무관하게 흘러간다는 생각에 씁쓸했고, 목욕탕에서 까칠하게 따지지 못한 내 소심함에 화가 났다. 그들에게 이 말만은 꼭 전하고 싶었다.

 

‘알몸으로 담배 피우는 당신, 정말 비호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