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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요약 잘하는 것 하나로 베스트셀러 작가, 사실일까?

by 사이먼 리 2024.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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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글에 날개를 달자] 읽기의 중요함, 요약과 발췌의 즐거움

 

텍스트 요약으로 글쓰기 훈련을 하라는 글을 읽은 것은 내가 글 쓰는 직업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을 때였다.

 

유시민 작가가 쓴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이란 책이다. 그는 나는 요약을 잘하는 것 하나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다른 사람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라고 자신있게 썼다. 증거도 제시했는데 그가 1988년에 내놓은 <거꾸로 읽는 세계사>이다.

 

요약을 잘하는 방법도 소개했는데, 바로 발췌. 효과적으로 요약하려면 정확하게 발췌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발췌는 텍스트에서 중요한 부분을 가려 뽑아내는 것이고 요약은 텍스트의 핵심을 추리는 작업이다.

 

그가 책에 기술한 글쓰기 비법은 구구절절 신박했다.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책을 손에서 놓자마자 대부분 어디론가 날아갔다. 아둔한 탓이다. 그래도 몇몇 내용은 오래도록 기억했는데, 그중 하나가 요약과 발췌. 유시민 작가처럼 나 역시 책을 읽으면서 꽤 오랜 시간 습관적으로 발췌와 요약을 한 덕분이었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하는 일이니 습관보다는 루틴(rou·tine)’이라고 하는 게 더 적합하겠다.

 

잘 쓰려면 우선은 많이 읽어야 하는데, 아무리 읽어도 아둔한 내 머리에는 책에 쓰인 멋진 구절, 인상적인 문장 등이 거의 남지 않았다. 그래서 시작한 게 발췌였다. 이를 토대로 책 내용을 요약해서 가끔 감상문같은 서평을 썼다.

 

발췌를 한 문장은 모두 공책에 담는다. 타자가 느려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저, 습관이다. 글을 쓸 때 꼭 써먹고 싶은 멋진 문장도 있고, ‘맞아, 맞아공감 가는 내용도 있다. 이렇게 설명하는 것보다는 보여 주는 게 이해가 빠를 것이니, 요즘 읽는 책 <여행의 이유>(김영하)에서 발췌한 내용을 하나 소개해 보겠다.

 

“여행이란 본질적으로 무엇일까? 그것은 여행의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나는 주인공이 이런저런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 대목을 발췌한 이유는 책 제목 <여행의 이유>에 대한 가장 짧고 적합한 답이 된다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대목과 함께 인생을 여행에 비유한 내용도 공책에 적었는데, 좀 길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인생이 여행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어디에선가 오고, 여러 가지 일을 겪고, 결국은 떠난다. 우리는 극단적으로 취약한 상태로 지구라는 별에 도착한다. 그렇기때문에 인생이라는 여행은 먼저 도착한 이들의 어마어마한 환대에 의해서만 겨우 시작될 수 있다. 신생아는 자기가 도착한 나라의 말을 모른다. 부모와 친척들이 참을성을 가지고 몇 년을 도와야 비로소 기초적인 언어를 익힐 수 있다. 부모는 아이가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가 될 때까지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준다. 충분히 성장하면 인간은 지구에 새로 도착한 여행자들을 환대함으로써 자신이 받은 것을 갚는다. 그리고 그들이 떠나갈 때 남아 있는 이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그들을 환송한다. 지구상의 거의 모든 문명은, 마치 다른 세계로 떠나는 여행자를 배웅하듯이 망자를 대한다. 관속에 노잣돈이나 길동무 인형을 넣어준다.”

 

나 또한 인생이 곧 여행, 지구별 여행이란 생각을 품고 살아왔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지구별 여행을 마쳤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문상객들에 대한 감사 글 첫머리에 아흔여섯 해 지구별 여행을 마치고 떠나는 어머니 배웅 길에 함께 해 주신 분들께 고개 숙여(꾸벅)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라고 적었다.

 

이런 내 인생에 대한 관점과 딱 맞아떨어지는 내용을 만났으니,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굳이 비유하자면 산에서 나물을 캐다가 100년 정도 묵은 산삼을 캔 기분이랄까. 이런 기분은 책을 읽다 보면 종종 느낄 수 있다. 책을 읽는 큰 이유 중의 하나다.

 

특별한 재주도 없고, 그리 똑똑하지도 않은 내가 글 쓰는 직업으로 밥 먹고 살 수 있었던 것은, 돌이켜 보면 읽고 쓰기를 즐긴 덕분이다. 좀 더 효과적으로 읽기 위해 시작한 발췌와 요약이 나를 글쟁이로 살게 해 줬다. 생각해 보니 읽기와 요약·발췌가 내 글쓰기 코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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