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에서 이어진 글.
울릉도 주민들은 참으로 현명했다. 일본의 잔재인 '적산가옥'을 부수지 않고 잘 보존, '일제의 울릉도 침탈 역사 자료'로 활용하고 있었다. 울릉도 최고의 번화가 도동에 있는 '울릉도 역사 문화 체험센터'가 바로 그곳이다.
'적산가옥(敵産家屋)'은 일본이 세계대전에서 패해 한반도에서 철수 하면서 정부에 귀속되었다가 일반인에게 불하된 집을 이르는 말이다.
'울릉역사문화체험센터'는 울릉도 여행에서 절대 빼 놓아서는 안 될 곳이다. 울릉도의 역사, 특히 일제의 수탈에 고통받으며 살았던 울릉도 주민들의 힘겨운 삶의 이야기와 일본인들의 무차별 포획으로 멸종당한 바다사자 '강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열강들이 호시탐탐 다른 나라 영토를 탐내던 시절, 울릉도의 울창한 원시림은 참으로 탐나던 땅이었다. 이 원시림이 탐이 난 열강들은 앞다투어 대한제국에 산림 채벌권을 요구했다. 이 시기에 일본인들이 무단으로 울릉도에 들어와 나무를 베어가는 일도 잦았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 1896년 러시아가 울릉도 산림 채벌권을 얻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산림 채벌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1904년 러일전쟁에서 패배하자 일본에 채벌권을 넘겨야 했다.
이 무렵부터 일본인들이 울릉도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1910년에 26가구 93명, 그 이듬해엔 1200명의 일본인이 울릉도에 거주했다. 일본인들은 주로 울릉도의 관문인 도동항 부근에 모여 살았다.
울릉역사문화체험센터는 울릉도의 이런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곳이다. 일본인들이 가장 많이 살던 1910년경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카모토 나이지로(坂本來次郞)란 사람이 당시 희귀 목이었던 솔송나무, 규목, 삼나무를 사용해 건축했다고 한다.
사카모도 나이지로는 벌목업자였다. 당시 울릉도에선 괘 재력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울릉도 입도 초기에 벌목업으로 많은 돈을 번 다음, 나중엔 그 돈으로 고리대금업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광복 이후 잠시 숙박업소(포항여관)로 탈바꿈했고, 1954년부터 2008년까지 가정집으로 사용되다가, 일제의 울릉도 수탈을 보여주는 자료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2006년 3월 2일 문화재 제235호로 등록됐다.
울릉역사문화체험센터 1층은 카페다. 한 잔 마시고 싶은 유혹을 물리치기 힘들 정도로 아담하고 예쁘게 꾸며져 있다. 4000원만 투자하면 향긋한 원두커피를 마시며 각종 전시물을 둘러 볼 수 있고, 체험센터 지킴이의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일 수 있다.
카페 벽면에는 울릉도와 독도의 과거와 현재를 볼 수 있는 기록물과 영상물이 전시 돼 있다. 그 중에서 역시 눈을 끄는 건 독도의 주인 바다사자 강치에 대한 설명이다. 일본 어부들의 무단 남획으로 사라진 독도 바다사자 강치의 서글픈 이야기가 동영상으로 소개되고 있다.
2층은 다다미방이다. 흡사 '장군의 아들'이란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일본식 다다미방이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그림이나 꽃꽂이 등을 두고 감상하는 작은 방인 전형적인 일본식 도꼬노마(床の間)도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채 방문객들을 다소곳이 기다리고 있다.
울릉도 산소량 육지 5배... 구미가 당기지만
방문객들을 다소곳이 기다리고 있는 건 '도꼬노마' 뿐만이 아니다. 울릉 역사 문화 체험센터 지킴이 정수씨(가명)도 방문객들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다. 그는 체험센터 지킴이다. 체험센터를 지키며 관광객들에게 바다사자 '강치' 이야기 같은 울릉도와 독도의 역사를 설명해 주고 있다.
"울릉도가 고향이세요?
"아뇨."
"그럼, 혹시 남편분 고향이 울릉도? 아~결혼 하면서…."
"아뇨, 남편 고향도 아니에요. 우리 둘 다 이곳에서 학교를 다니거나 그런 적이 없어요."
울릉도 역사 문화 체험센터를 지키고 있고, 울릉도 역사를 소개하고 있기에 당연히 울릉도에서 태어났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울릉도와 그의 인연은 그리 긴 세월에 걸쳐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그렇지만 아주 강렬했다.
"여행하러 울릉도에 왔다가 홀딱 반해서 2년 전에 아예 눌러앉았어요. 울릉도에 반한 이유요? 음~~좋아요, 정말 좋아요, 뭐랄까 아주 빼어난 미녀와 함께 사는 남자 마음이라고 해야 할까요. 울릉도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에요. 처음엔 매일 사진 찍으러 다녔어요."
그는 이렇게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나 지금 행복해서 죽을 것 같아요'라고 말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 만큼 환한 웃음이었다. 여행 왔다가 눌러앉았다는 말에 호기심이 들어 개인 신상에 관한 말을 꼬치꼬치 캐묻자, 짜증 내지 않고 '쿨'하게 대답해 준다.
"음~전남 담양이 고향이고요, 성장기는 대부분 경기도에서 보냈어요. 서울, 안동(경북)에서 초등학교 교사 생활 한 20년 했고요. 가족들요? 울릉도 간다고 하니 모두 흔쾌히 동의했어요. 기관지가 안 좋아서 고생했는데...이 곳 산소량이 육지의 5배나 돼요, 저한테는 최적의 장소인 셈이죠, 사실, 교사 그만둔 것도 기관지 때문인데, 울릉도가 건강에 좋다고 하니 흔쾌히 동의 한 거죠."
산소량이 육지의 5배라는 말에 구미가 당겼다. '나도 한 번 시도해 볼까!' 하다가 얼른 그 생각을 털어내 버렸다. '뭐 해서 먹고 살지, 애들 학교는 어떻게 하고', 같은 문제는 다 제쳐두더라도 이곳에서 살 수 없는 결정적 이유가 하나 있었다.
바로 '길'이다. 보기만 해도 까마득한, 도대체 저곳을 어떻게 오른다는 것인지 의아할 정도로 가파른 언덕이 끝도 없이 이어진 울릉도 길. 그 길을 운전하며 돌아다닐 엄두가 도저히 나질 않았다. 그렇다고 매일 걸어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
울릉도 역사 문화 체험센터는 울릉도의 관문인 도동항 부근에 있어서, 여행을 시작하거나 끝내고 갈 때 쯤 들르기 좋은 곳이다. 그래서인지, 여행객들 발길이 점점 늘고 있다고 있다.
이곳을 방문한 시점은 여행 말미다. 며칠간 정들었던 곳을 떠난다는 아쉬움과 '스위트 홈'에 대한 그리움이 교차하는 그런 시기였다.
난 이곳에서, 아쉬움과 그리움, 여행이 주는 약간의 피로감까지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차 한 잔의 여유로움이 주는 포근함과 흥미로운 울릉도 역사, 허순희 씨 설명을 들으며 느낀 우린 한 민족이라는 동질감이 이곳이 객지라는 사실을 잠시 잊게 했다.
울릉도 역사 문화 체험센터는, '여기 오지 않았다면 정말 큰 일 날 뻔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인상 깊은 곳'이었다. 다시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이고, 실제로 난 몇 년 뒤 다시 그곳을 방문한 적이 있다. 첫 방문 이후 10여 년이 흐른 지금도 그 아담함과 이국적인 옛스러움이 눈에 선하다. 그때 쓴 여행기를 읽으며 다시 사 보고 싶은 갈증을 달랜다. <끝>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리막길에서 고장난 자전거 브레이크, 어쩌지? (2) | 2025.01.07 |
---|---|
수리산 '최경환 성지' 자전거 여행 (2) | 2025.01.06 |
배멀미 보다 더 무서운 울릉도 차멀미 (1) | 2025.01.02 |
괭이갈매기 천국 울릉도 (4) | 2025.01.01 |
박물관 외벽을 뚫고 나온 공룡과 꼬마 해설사...‘추억‘ (2) | 2024.1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