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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배멀미 보다 더 무서운 울릉도 차멀미

by 사이먼 리 2025.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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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분지에 있는 투막집

*전편에서 이어진 글

 

"네? 오늘 독도에 입도하는 건 불가능하다고요?"

 

울릉도 여행 인솔자인 정환씨가 심각한 얼굴로 전화기에 대고 한 말이다. 전화를 끊은 후 그는 낭패를 본 듯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배가 못 뜬다는 소식인가요?" 하고 물으니 정환씨.

 

"네, 선장님과 직접 통화했는데, 오늘은 파도가 높아 도저히 배를 띄울 수 없다고 하네요. 아무래도 오늘은 울릉도 관광이나 해야 할 것 같아요. 독도는 조상 대대로 덕을 쌓아서, 신이 허락한 사람만 발을 들일 수 있다고 하더니, 그 말이 거짓말은 아닌가 보네요."

 

일정이 갑자기 바뀌자 기대감과 긴장감이 무너지면서 실망감과 함께 나른함이 찾아왔다. 예정대로라면 점심을 먹자마자 독도 가는 배를 타야 했다. 독도행 배를 타면 10명 중 8명 정도는 멀미 때문에 고생한다는 말을 들은 터라 잔뜩 긴장하고 있던 참이었다.

 

긴장이 쫙 풀린 상태에서 울릉도 관광을 하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20인승 버스였다. 하짐나 난 버스에 오르자마자 난 다시 긴장모드로 재빠르게 전환해야 했다. 배멀미보다 더 어지러눈 차멀 리가 기다리고 있어서다.

 

울릉도 버스는, 아니 울릉도 길은 무척이나 험하다. 대부분이 버스 두 대가 겨우 지나칠 수 있을 정도로 좁은 언덕길로 이루어져 있다.

 

길이 좁은 거야 그렇다 치고, 문제는 바로 언덕인데,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다. 보기만 해도 까마득한, 도대체 저곳을 어떻게 오른다는 것인지 의아할 정도로 가파른 언덕길이 가도 가도 끝도 없이 이어져 있다. 언덕길 옆은 또 어떻고내려다보기만 해도 아찔한 천길만길 낭떠러지였다.

 

길이 이렇다 보니 택시를 포함한 대부분의 승용차는 사륜구동 레저 스포츠용 자동차였다. 일반 승용차보다 훨씬 튼튼함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석 달에 한 번은 바퀴와 브레이크를 점검해야 안심할 수 있다고 한다.

 

울릉도 길이 거친 이유는 울릉도가 바다에 떠 있는 거대한 바위이기 때문이다. 울퉁불퉁한 거친 바위 사이로 길이 나 있다 보니 경사가 30~40°나 되는 S자나 8자 모양의 고갯길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는 것이다. 울릉도 길이 얼마나 험한지, 그 험하다는 강원도 길을 누비는 운전의 달인들조차도 울릉도만 오면 두 손 두 발 다 든다고 한다.

 

이렇게 까마득한 고갯길을 버스는 거침없이 올라갔다. 난 그때마다 오금이 저렸고 숨이 막혔다. 배멀미보다 차멀미가 더 무서운 이유였다. 이렇듯 제멋대로 뛰는 차에 조리질 당하면서도 나는 버스에 오른 것을 단 한 순간도 후회하지 않았다. 울릉도 풍광이 그만큼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초가집과 닮은 투막집... 기와집과 닮은 너와집

너와집

 

놀라운 것은 이 험한 길을 통과하면서 버스기사가 관광해설까지 한다는 것이다. 대충대충 하는 게 아니라 꽤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내용까지 줄줄이 읊었다. 이 모습이 너무나 놀라워 잠시 버스가 멈춘 틈에 기사와 대화를 나누었다.

 

"혹시 울릉도에서 관광버스 하려면 특별한 면허증이 필요한가요?"

"아니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울릉도에서 살려면 (운전을) 이 정도는 해야 합니다."

"혹시, 관광 해설 교육을 받은 적이 있나요?"

"어디 가서 교육 같은 걸 받은 적은 없고요. 이거 하려고 책 보면서 공부 좀 했어요. 제가 태어나서 살아온 곳이라 기본적인 것은 알고 있고요."

 

나름대로 노력을 해서 얻은 관광 해설 실력이었고, 장시간 경험을 통해 다진 운전 실력이었다.

 

S자 모양의 고갯길을 몇 굽이 넘다가 모처럼 평평한 곳에 이르렀다. 친절한 운전기사가 '나리분지'라고 설명했다. 모처럼 평지를 만나니 편안한 느낌이 들어 좋았다. 몇 시간 동안 버스에 조리질 당했다는 사실을 이곳에서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눈에 익은 초가집이 보여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반가운 마음에 뛰어갔다. 어린 시절 살던 초가집과 엇비슷해 보여서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내가 살던 초가집과는 어딘가 다른 모습이었다. 설명서를 읽으니 초가집이 아니라 '투막집'이었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초가집과 다른 점은 지붕을 짚이 아닌 억새로 엮은 것이었다. 지붕을 억새로 엮은 이유는 벼농사를 짓지 않아 짚단이 없었기 때문이란다.

 

'투막집' 부근에 '너와집' 도 있었다. 둘 다 울릉도 전통 가옥이다. 투막집이 초가집과 닮은 꼴이라면 '너와집'은 기와집과 닮은 꼴이다. 기왓장 대신 지붕에 널빤지 모양의 너와를 올린 게 기와집과 다른 점이다. 너와는 200년 이상 된 붉은 소나무를 잘라서 만든 널쪽이다.

 

나리 분지는 개척할 당시 거주민 500여 명이 살았던 울릉도에서 가장 큰 마을이었다.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이 '섬말나리 뿌리'를 캐어 먹고 연명했다고 해 '나리골'이라 부른다고 한다.

 

나리 분지는 울릉도에 있는 유일한 평지로, 그 옛날 화산이 분출한 곳이다. 이곳에서 화산이 폭발해서 울릉도란 거대한 바위섬이 만들어졌다. 또한 화산 폭발로 지반이 붕괴되어 평지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나리 분지는 사람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뭐랄까, 거대한 무엇인가에 꼭 안겨 있는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 편안한 느낌의 진원지는 그곳의 독특한 지형이었다. 높은 산들이 품고 있는 듯한 또는 호위하고 있는 듯한 지형이 주는 아늑함이 편안함을 느끼게 했다.

 

나리 분지를 벗어나자 버스가 다시 요동을 쳤다. 곡예 하듯 달리는 버스 차창 밖에 손바닥만 하게 변한 작은 나리 분지가 있었다. 아름다웠다. 불현듯 '저곳에 둥지를 틀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다.

*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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