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전, 전라북도 정읍에 있는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을 다녀온 적이 있다.
알고 보니 정읍은 그 옛날 동학혁명군이 관군을 처음으로 크게 이긴 곳이었다. 이를 추모하고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곳이 동학혁명기념관이다. 동학농민혁명에 관련된 무기, 생활용품, 전적류를 전시·보존하고 있으며, 동학농민혁명의 전개 상황을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동학혁명기념관에 발을 들이니, 구리 빛 농민들 피부와 꼭 닮은 '말목장터 감나무'가 입구에서 사람들을 반겼다. 농민들이 고부군수 조병갑 횡포에 못 이겨 봉기할 때 이 감나무 밑에서 결의를 했다고 한다. 말목장터 감나무는 지방 문화재 제10호로 지정되어 있다.
동학혁명의 결정적 원인을 제공한 것은 이미 알려진 대로 고부군수 조병갑의 착취와 탄압이다. 동학교도들이 1894년 1월 전봉준을 중심으로 전라도·충청도 일대 농민들을 모아 고부 관아를 습격하면서 시작됐다.
당시의 고부군(古阜郡)은 전북 정읍시 일원과 부안군 일부를 포함한 지역이니, 정읍은 동학혁명의 발원지인 셈이다.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이 정읍에 자리 잡은 이유였다.
관아를 점령한 전봉준은 정부에 조병갑의 횡포를 시정할 것과 외국 상인의 침투를 금지하라는 등의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정부로부터 폐정을 시정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10여 일 만에 해산하였다. 그러나 고부민란을 조사하러 온 안핵사 이용태는 오히려 민란 관련자들을 역적죄로 몰아 혹독하게 탄압하였다.
이용태의 횡포가 심해지자 전봉준은 다시 수천 명의 농민들을 모았고, 1894년 3월 21일 최시형의 탄생일을 기해 궐기한다. 당시 정부는 장위영 등의 군대를 파견하였으나 농민군은 황토재 승리에 이어 정읍, 흥덕, 고창, 영광, 함평, 장성, 나주, 장성, 태인, 부안 등에서 관군을 물리쳤고, 전주성까지 점령했다.
하지만 정부 요청을 받은 청나라 군대가 개입했고, 이를 빌미로 밀어닥친 일본군과 관군에게 우금치 전투에서 패해 동학혁명군은 끝내 깃발을 내리게 된다.
2024년 12월 21일, '윤석열 체포구속'과 '사회대개혁', '개방농정 철폐' 등을 내걸고 트랙터‧차량을 몰고 서울로 향하던 농민들이 서울 서초구 남태령고개에서 경찰에 막혔다.
이들은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 소속으로, 21일 '세상을 바꾸는 전봉준투쟁단 트랙터 대행진'을 하면서 서울로 향했다. 앞서 지난 16일 경남과 전남에서 각각 '동군'‧'서군'으로 나눠 서울로 이동했다.
농민들은 "바로 여기 남태령이 우금치입니다. 갑오년 동학농민군이 끝내 넘지 못한 그 우금치가 바로 여기 남태령입니다. 이번에는 넘고 싶습니다. 반드시 넘어야만 합니다. 기필코 넘을 것“이라며 도움을 요청했다. 시민 수천 명이 모여들어 농민들과 함께 밤새 “윤석열 구속” “윤석열 체포” “윤석열 파면” 등의 구호를 외쳤다. 동학농민혁명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21세기 우금치 남태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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