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유산을 품고 있는 전라북도 무주(茂朱). 무주라는 지명보다는 '덕유산 스키장'을 품은 곳으로 더 잘 알려진 땅이다. 면적은 631.76㎢로, 서울(605.2㎢)보다 더 넓다. 하지만 인구는 2023년 11월 기준 2만 3300여 명 정도로, 서울의 1개 동(洞) 수준이다.
예전부터 무주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산간 지역이고 산세도 제법 험해 인구 밀도가 낮다. 지리산과 연결된 덕유산이 있어 빨치산 이야기를 다룬 영화나 소설에 자주 등장한다. 그래도 지난 1966년에는 7만 6000여 명 정도가 모여 살았지만, 산업화에 따른 인구 도심 집중화 시기를 겪으면서 지난 2000년부터 인구 2만 명의 '지방 소멸 시대'로 접어들었다.
예상했던 대로 무주는 한없이 고즈넉했다. 차창 밖에 펼쳐진 풍경은 끝없는 산과 길. 간혹 빨간색과 파란색의 양철 지붕과 검정 계통 기와지붕이 보였지만, 인적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먼발치로 보이는 눈 쌓인 산에 스키장이 있으리라 예상됐다. 고향이 전라도이고, 그래서 무주를 수도 없이 여행했다고 입버릇처럼 자랑하는 일행에게 "저곳이 스키장이냐?"고 묻자 "그라제(그렇지)"라는 답이 돌아왔다.
단단한 마을 공동체, 어르신들 용돈까지
발길이 처음 머문 곳은 무주 덕유산 리조트 스키장이 아닌 무주군 안성면 두문마을에 있는 '무주 안성 낙화놀이 전수관'이다. 전수관 지킴이 조재복(53) 사무국장이 우리 일행을 반겼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설명을 이어 나갔다.
"뽕나무를 태워 숯가루를 만든 다음 그것을 소금, 말린 쑥과 함께 한지에 말아 낙화봉을 만들고, 그것을 쇠줄 등에 달아 태우는 놀이인데, 밤에 보면 정말 장관입니다."
참나무가 아닌 뽕나무로 숯가루를 만든 이유는, 예전부터 그렇게 해 왔기 때문이다. 뽕나무를 산에서 베다가 태워서 숯을 만드는 게 힘겨워 언젠가 조 사무국장은 시중에 흔한 참나무 숯을 사다가 쓰자고 제안해 봤다. 하지만 옛날에 하던 대로 해야 한다는 어르신들 반대가 있어 지금도 뽕나무로 숯을 직접 만들어 쓰고 있다고 한다.
이 놀이는 조선 후기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 강점기인 1939년 무렵에 중단된 놀이를 2007년에 복원했고 2009년에는 낙화놀이 보존회를 구성했다. 2016년 10월에는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56호로 지정됐다. 이어 2021년 8월에 전수관을 개관했으니 전통 놀이로 굳건하게 자리를 잡았다고 할 수 있다.
전수관에서, 낙화봉을 직접 만들어 줄에 달아 불을 붙여 보는 '낙화 체험'을 주중은 물론 주말에도 할 수 있다. 전수관 옆에 있는 저수지에서는 낙화놀이 시연 행사가 1년에 한 차례 1박 2일 일정으로 진행된다. 1박 2일 동안 낙화놀이 시연은 두 번 이루어진다. 지난해(2023년) 8월 행사에 3000여 명 정도가 몰려 조용하던 마을이 인파로 북적였다는 게 조 사무국장 설명이다.
두문마을 밖에서도 낙화놀이가 진행된다. 마을 사람들이 직접 나가서 시연을 하는 것. 지난해 2월에는 서울 상계동 정월 대보름 민속축제에서, 그 이전 해에는 tvN 드라마 <조선 정신과 의사 유세풍> 촬영을 위해 '출장 시연'을 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BTS RM 솔로 앨범 뮤직비디오를 위해 낙화놀이를 시연했다. 지난 2007년 낙화놀이를 복원한 이래 지금까지 20여 차례 정도 이런 식의 '출장 시연'이 이루어졌다.
의미 있는 것은 이 놀이가 마을 공동체를 단단하게 하고, 더불어 마을 경제에도 보탬을 준다는 사실이다. 낙화놀이 준비부터 시연까지 모든 과정에 70~80대 어르신들이 직접 참여하고, 그 대가를 받는다.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용돈벌이는 된다는 게 조 사무국장 귀띔이다.
또한 공동체와 관련해 이영배 전북대학교 교수 등은 '두문의 전통과 낙화놀이'(2015년)라는 조사·연구 자료집에서 "원주민과 귀농인들이 만나는 기회를 제공하고, 함께 일을 하며 공동체의 일원으로 귀속하게 한다"며 "주민들의 교류를 촉진시키고 통합하는 공동체적 의의를 여전히 지니고 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놀이의 유래와 관련해서는 "서당 학동들이 갈고닦은 실력을 마을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강(講)'이 열린 날 함께 진행한 서당풍속의 한가지였다"라고 설명했다.
눈꽃에 취하게 되는 덕유산 최고봉 향적봉
두문마을을 벗어나 하룻밤을 묵은 다음 먼발치로 보이던 덕유산리조트 스키장에 발을 들였다. 인산인해. 한없이 고즈넉한 무주의 다른 곳과 분명하게 대비되는 시끌벅적한 풍경이 눈과 함께 펼쳐졌다. 곡예를 하듯 흰 눈 위를 미끄러지는 스키어들의 몸놀림에 나도 모르게 '와~'하는 탄성이 나왔다. 스키를 발에 걸치고 걸음마를 하는 어린이들을 볼 때는 손을 잡아 끌어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스키를 한 번도 타보지 않은, 위험천만해 보이는 스키를 앞으로도 탈 계획이 전혀 없는 내 목적지는 해발 1614m 덕유산 향적봉이었다. 그곳에 올라 한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맞는 혼자만의 조용한 의식을 치르는 게 내 소박한 소망이었다. 2023년 끄트머리인 12월 29일에 덕유산을 찾은 이유다.
단단한 두 다리와 암벽 등반으로 단련된 두 팔로 눈 쌓인 아름다운 산을 등반하겠다는 통 큰 계획은 없었다. 50년 넘게 사는 동안 단 한 번도 암벽을 오르는 고난이도 스포츠를 즐긴 적이 없다. 물론, 앞으로도 할 생각이 없다.
내 계획은 곤돌라 (gondola)를 타고 1520m 설천봉에 오른 다음, 안전한 등산로를 타고 향적봉에 올라 '왔노라, 보았노라, 느꼈노라'를 외치는 것이었는데, 이 또한 인파 때문에 쉽지 않았다. 눈밭에서 30분 이상 줄을 선 다음에야 곤돌라에 오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곤돌라에서 내려다 본 덕유산 눈꽃은 한마디로 장관이었다. 향적봉에 올라 내려다 본 덕유산 풍경은 현실 세계가 아닌 그림 속 세상인 듯한 신비감을 느끼게 했다. 계획대로 '왔노라'를 외치려 했지만, 조용히 눈 세상을 감상하는 이가 대부분이라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까 봐 그만두었다.
무주의 아름다움은 덕유산을 중심으로 펼쳐진 천혜의 자연경관에 있었다. 여기에 낙화놀이 같은 전통이 더해져 향기로웠다. 이 아름다움과 전통의 향기로 인구 소멸·지방 소멸의 파고를 넘어 설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에 들떠서 보낸 1박2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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