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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서평)

[서평] 작가 변한다가 소개하는 70권의 책 <굶주린 마흔의 생존 독서>

by 사이먼 리 2023. 10. 30.

 

 

'문학, 길 없는 길. 읽고 읽고 또 읽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쓰고 쓰고 또 쓰면 열리는 길.'

 

작가 조정래가 등단 50주년 기념 에세이 <홀로 쓰고, 함께 살다>(해냄. 2020) 들머리에 새긴 글이다. 50년 동안 한시도 잊지 않고 곱씹은, 작가 조정래의 경구라고 한다. 이 세 가지를 50년 동안 끊임없이, 줄기차게, 치열하고, 끈덕지게 실천해 왔고, 지치지 않은 노력의 결과가 작가 조정래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도 '작가 조정래 같은 문학계의 거목을 꿈꾸었던 것일까' 상상하며 책장을 넘겼지만 그건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 책 읽기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었다. 먹고, 배설하는 일처럼 기본적인 욕구였다는 게 더 정확하겠다. 그래서인지 그의 책 읽기가 더 치열하게 다가온다.

 

"루틴(routine)을 지키지 못한 적이 있었다. 매일 새벽에 하던 책 읽기를 과중한 업무 때문에 며칠간 하지 못했더니 업무 중 보는 글마다 그렇게 간절할 수가 없었다. 계속 읽고 싶어 죽겠다. 머리에선 '이걸 하나의 책이라 생각해' 주문을 건다." - p. 124

 

<굶주린 마흔의 생존독서>(느린서재, 20239)는 독자를 독서의 세계로 이끌려는 작가의 의도가 다분히 드러나는 '독서 길라잡이'. 출판사는 그의 책을 독서 에세이로 분류했다.

 

<굶주린 마흔의 생존독서>는 지난 2년 동안 800권 가까이 책을 읽었다는 작가 변한다(실명 변정현)가 엄선한 책 70권을 소개하고 있다. 더불어 그의 일상과 인생, 그리고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도 녹아 있다. '에세이'로 분류되는 이유였다.

 

"저 책 냈어요"라는 짤막한 문자 메시지를 받고 책을 주문했다. 책을 읽는 내내 '많이 읽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익히 알고 있는 작가 변한다의 이미지도 오버랩(overlap)됐는데, 미스매치(mismatch)였나 보다. 활동적이고, 목소리도 우렁차 책만 읽을 것 같은 문학소녀 이미지하고는 좀 거리가 있어서였다.

 

더군다나 그는 무척 바쁘다. 출퇴근 꼬박꼬박해야 하는 직장이 있고, 한참 예민해 손 많이 가는 중학생 아들도 있다. 작가는 책 들머리에서 치열하게 책을 읽어야 했던 이유를 설명했는데, 싱겁게 느껴졌다.

 

"첫 직장이었던 회사가 지방에 있어(아주 멀어) 주말마다 왕복 여덟 시간 넘게 도로 위에서 보내야만 했는데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고민 끝에 찾아낸 게 효과 좋은 수면제, 바로 책이었다. 그러다가 나중엔 두근거리는 가슴 때문에 숙면을 취할 수가 없었다. 도착 전까지 무슨 책을 완독할까 설레었으니 말이다." - p. 23

 

"막힘이 없는 시원한 글을 보면 훔치고 싶었다"

그는 이 시기를 '매주 버스를 타고 독서 기행을 하며 환상적으로 보낸 10'이라 소개했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그는 아무리 바빠도 매일 새벽 한 시간 남짓 책을 읽는 독서 홀릭(holic)으로 서서히 변했고, 지금은 독서 예찬론자가 됐다.

 

"오직 독서만이 바쁜 일상 속에서 펄떡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진정시키며 달랠 수 있다. 침묵 속에서 자그마한 평안과 지혜를 얻기엔 독서만 한 게 없다." - p. 79

 

그의 독서 예찬은 이렇듯 화려하다. 독서의 효능에 대한 강한 확신이 있기에 가능한 화려함일 것이리라.

 

독서 예찬론자 시기를 거친 그가 새롭게 진입한 곳은 '글쓰기'의 세계이다. 이 세계에 발을 들일 시기, 그는 대화 중 불쑥 "글을 쓰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인지를 확인해 보려 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첫 책 <낀 세대 생존법>(헤이북스, 2021) 출간 준비를 하던 때였다.

 

이 말을 듣고 내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움찔했었다. 나 또한 수백, 수천 번 자신에게 던진 질문이다. 지금도 가끔 이 질문을 하지만, 내 속에서 나오는 답변에서는 늘 2%의 자신감이 빠져있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씩씩해 보이는 평소 이미지와 부합하는 자신감과 확신이 있었다. 그는 책에서, 읽고 생각하고 느끼기만 한다면 글쓰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밝힌다. '그런 의미에서 글쓰기는 자판기의 음료와 같다'라고 비유한다. 읽기란 버튼을 누르면 음료처럼 바로 나오는 게 글쓰기라는 말이다.

 

이 대목을 읽으며, '어쩌면 그가 작가 조정래가 말한 길 없는 길이라는 문학의 길을 찾았을 수도 있겠다'는 궁금증과 기대감이 들었다. 섣부른 자만심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일었다. 이어진 다음 대목을 읽으면서야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의 실체가 사실은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막힘이 없는 시원한 글을 보면 훔치고 싶었다. 부디, 목구멍을 타고 꿀떡꿀떡 넘어가는 책을 죽기 전에 써보고 싶다." - p. 39

 

<굶주린 마흔의 생존독서>는 읽을 열정과 써볼 용기를 주는 책이다. 이것이 작가의 집필 의도라면, 판매 부수와 상관없이 이 책은 이미 성공을 거둔 것이다.

 

이제 글을 쓰면서 살 자신이 생겼느냐고 물으니 전화기 너머에서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읽을수록, 쓸수록 알 수 없는 게 글인 것 같아요. 그래도 독자들 피드백을 받으면서 자신감을 얻고 있어요. 지원군이 생겼다는 믿음에 든든함도 느끼고요"라는 라는 말이 들려온다. 씩씩한 목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