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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서평)

[서평] 삶의 전환점에서 만난 축복 '히말라야'

by 사이먼 리 2023. 12. 8.

 

 교사 신한범이 쓴 <일생에 한 번은 히말라야를 걸어라>

 

 

2월 어느 날, 3년만인지 4년만인지! 참으로 오래간만에 온 연락이었다. '책을 한 권 냈다', '34년 교사 생활을 마치고 조만간에 명퇴한다'는 문자 메시지였다. '축하합니다!'라고 답장했더니, 그는 며칠 뒤 자기가 쓴 책을 보내 왔다.

 

함께 술을 마시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그의 '히말라야' 여행기였다. 그제서야 그가 히말라야 홀릭(colic, 중독자)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는 방학만 되면 자석에 끌리듯 히말라야로 달려간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언젠가 꼭 히말라야 이야기로 책을 엮고 싶다고도 했다.

 

<일생에 한 번은 히말라야를 걸어라>(신한범 저/호밀밭 출판사 펴냄)라는 제목부터 낯설지 않아 좋았다. 그가 수도 없이 되뇐 말이다. 이 말을 들으며 '그래 나도 꼭 한 번 가고 말 거야!'라고 속으로 되뇌곤 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히말라야와 비교하면 뒷동산 수준인 집 근처 관악산도 겁내는 내게, 히말라야 트레킹은 그저 이루지 못할 꿈일 뿐이었다.

 

그에게 책 낼 길을 열어준 것은 () 협성문화재단이다. 이 재단이 출판을 장려하기 위해 공모한 '2017 NEW BOOK 프로젝트'에 선정돼 책을 낼 수 있었다. 그는 장하게도 책 판매 수익금을 네팔 포카라에서 공부방을 운영하는 수녀님에게 기부하겠다고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공개적으로 약속했다.

 

교실 홀릭 천생 교사, 히말라야 홀릭 되기까지

 

신한범 선생, 아니 작가 신한범은 책에서 일생에 한 번은 히말라야를 걸으라고 권한 까닭을 시원하게 밝히지는 않았다. 그저, 교단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는 '교실 홀릭'이 전문 산악인 못지 않은 '히말라야 홀릭'으로 변하는 과정을 스케치했을 뿐인데, 신기하게도 읽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의 히말라야 찬사는 화려함을 넘어 찬란하다. 책을 펴는 순간부터 덮을 때까지 그의 화려한 히말라야 찬사와 마주쳐야 하는데, 나중에는 슬프고도 우아한 비장미까지 느껴진다. 그가 불쑥불쑥 던지는 찬사만 눈여겨 봐도 그가 얼마나 히말라야에 깊이 중독돼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의 히말라야 찬사를 맛보기로 몇 구절 소개하면.

 

"히말라야와 한 번 관계를 맺게 되면 히말라야를 몰랐던 이전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

"삶의 전환점에서 히말라야를 만난 것은 축복이었다."

"트레킹을 위해 가지만, 걷고 있는 곳은 산이 아니라 인생이다."

"히말라야를 걷지 않은 사람은 많아도 한 번(만) 걸은 사람은 없다."

"나는 지금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그림 속을 걷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책 읽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심쿵한' 글귀가 책 곳곳에 보석처럼 박혀 있다. 이와 함께 눈으로 쓱 훑기만 해도 향기가 묻어나는 아름다운 시구를 곁들여 놓아, 읽는 재미를 한층 더하게 한다. 내 눈에 날아와 박힌 시 한 자락을 역시 맛보기로 소개하면.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시인 문정희, '한계령을 위한 연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은 끌림"

 

 

그렇다고 책 <일생에 한 번은 히말라야를 걸어라>가 이런 아름다운 말로만 도배 돼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 히말라야를 트레킹 하는데 필요한 갖가지 정보도 그득하게 쌓여 있다.

 

그중에는 '히말라야에 가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고개를 갸우뚱 거리게 하는 것도 있는데, 바로 고산병에 관한 대목이다. 히말라야 트레커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꼭 눈여겨 봐야 할 내용이다.

 

"고산병은 해발 2500m 이상 고도에서 산소량이 부족해 발생하는 신체적 어려움인데, 그저 조심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 정확한 원인 파악이 되지 않았고, 치료제도 개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고산병 초기 증상은 두통, 두근거림, 식욕부진 등이며 상태가 심해지면 뇌에 손상을 주거나 폐수종으로 생명을 잃을 수 있다. 고산병이 찾아오면 하산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자칫 시간을 허비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다."-책 속에서-

 

또한 작가 신한범은 미래 히말라야 트레커를 위한 갖가지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대표 트레킹 코스와 기간, 그리고 트레킹에 적합한 계절, 트레킹을 준비하는 방법, 트레킹 필수품, 가이드와 포터를 고용하는 방법 등등. 이 책 한 권만 여행 가방에 넣으면 히말라야 여행길이 절대 두렵지 않을 정도로 정말 꼼꼼하게 책 끝머리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 길라잡이'에 정리해 놓았다.

 

책을 마칠 즈음 작가 신한범은 그의 책 제목인 '일생에 한 번은 히말라야를 걸으라'고 한 까닭을 알려 주는 듯한 글을 던지지만, 역시 정답과는 거리가 먼 바람 같은 말이다.

 

"연어의 희귀처럼 히말라야를 찾고 있지만, 이유를 알지 못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은 '끌림'이다. 티베트 성자 밀레라빠(Milarepa)는 여행을 떠나는 것만으로도 깨달음의 반은 성취한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히말라야로 떠났지만, 무지한 나는 히말라야를 걸으면서도 깨달음을 느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일상생활이 권태롭고 짜증이 날 무렵이면 히말라야가 생각난다."- 책 속에서-

 

이처럼 작가 신한범은 일생에 한 번은 히말라야를 걸어야 할 까닭을 찾는 일은 오롯이 독자의 몫으로 남겨 뒀다. 아마도 사람마다 히말라야를 걸어야 할 이유가 다를 것이 분명하기에 그러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 이유를 알아내는 일이 삶의 의미를 찾는 것만큼이나 어려워서 그랬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