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그리고 영원한> 세월호 참사, 잠시라도 비아냥댔다면 보세요
<짧은, 그리고 영원한>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이들의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책이다. 혹시나 하고 끈질기게 읽어 봤지만, 글이 거의 다 끝날 때까지 특별한 이야기를 찾을 수 없었다. 이 부분까지만 놓고 보면 ‘아빠미소’가 얼굴 가득했을 그런 이야기일 수도 있다.
솔직히, 이야기의 결말을 잊고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러면 안 되지!' 하고 정신을 가다듬어야 미소가 사라졌다. 애써 정신을 가다듬은 이유는 이 책의 결말이 416 참사이기 때문이다. 살아서는 평범했지만, 죽어서는 결코 평범할 수도 평범해서도 안 될 많은 이들의 이야기가 이 책을 관통하고 있다.
이 책은 세월호 참사로 별이 된 단원고등학교 교사와 학생들 이야기가 담긴 약전(간략하게 쓴 전기)이다. 총 12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1~10권은 단원고 10개 반 학생들의 꿈과 희망이, 11권에는 교사들의 삶이, 12권에는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기고 등이 실려 있다.
이 책을 펴낸이는 139명의 작가(동화, 수필, 소설, 시나리오, 시, 르포)다. 이들이 1년여간 희생자 가족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자료를 모아 지난 1월 발간했다. 발행 기관은 경기도 교육청이다. 희생자들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지난 2015년 1월 '416 참사 단원고 희생자 약전 발간 소위원회'를 구성했다고 한다.
유시춘 약전 발간위원장(작가)과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은 책 들머리에서 이 책을 펴낸 이유를 설명했다.
유시춘 : "416 참사라는 역사적 대사건의 심층을 들여다보고 이를 기록하고자 했다. '잘 다녀올게요.' 하고 환하게 웃으며 수학 여행을 떠난 그들이 어떤 꿈과 희망을 부여안고 어떤 난관과 절망에 부딪히며 살았는지 있는 그대로 살려내고자 했다." -책 속에서-
이재정 : "'기록하지 않은 기억은 망각되고, 기록은 역사가 된다.', 우리가 오늘 그날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이유입니다. 단원고 학생과 교사 261명을 포함해 모두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416 세월호 참사, 그들의 못다 한 꿈을 영원히 기억하고 우리의 책임을 통감하며 후대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해 이 참사를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책 속에서-
"딸을 보내고 아팠지만, 어떤 식으로든 위로받고 싶었다"
총 12권에 이르는 긴 글의 끝단인 12권에서 눈길을 확 잡아끄는 대목을 찾을 수 있었다. 희생자 부모가 직접 쓴 '집필 소회'다. 자식을 잃은 어미의 아픔이 고스란히 녹아 있고, 그 아픔을 작가에게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오늘 나는 가슴 저미도록 그리운 내 딸 지민이 이야기를 할 것이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무기력한 엄마였기에 더욱 나는 따뜻한 가슴을 지닌 누군가에게 나의 딸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지민이를 보내고 하루하루 밥을 먹고 잠이 드는 것조차 딸에게 너무도 미안했고 가슴 아팠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어떤 식으로든 위로를 받고 싶었다. 4월 16일은 책이나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비극 그 자체였다. 그 비극이 내겐 현실이 된 것이다. 숨 쉬는 것조차 힘든 통한의 시간. 작가님은 그런 내 마음에 참으로 정겹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분이었다." - 책 속에서-
희생자 부모를 인터뷰하며 이야기를 한 땀 한 땀 엮은 작가의 고통도 책 속(12권)에 녹아 있는데, 이 대목에서도 내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같은 글쟁이로서 동병상련하는 심정을 느낄 수 있어서다. 김순천 르포작가의 집필 후기다.
"희생된 아이를 중학교 때 가르쳤던 한 선생님은 아이의 장례식에 가서 그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고 한다. 결국, 그 선생님은 분향하지 못했다. 자신보다 어린 제자에게 분향한다는 것을 현실로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작가들이 희생된 아이들의 삶을 기록 한다는 건 그런 기분이었을 것이다. 기록할 수 없는 이야기를 기록해야 하는 이 비극적인 마음, 그래서 두려웠고 그래서 더 잘 기록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기록하면서 떨리는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다." -책 속에서-
'보수 엘리트, 국민을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12권에서 세월호 참사를 통해 드러난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특히, 엘리트 계층의 민낯을 소개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이와 함께 세월호 참사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아프게 지적하기도 했다. 이 역할을 맡은 이는 소설가 김진경이다.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 자발적으로 나서 많은 승객을 구조한 것은 해경이 아니라 어부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언론에서 철저히 배제당했다. 구조하기 위해 전국에서 자발적으로 모여든 시민들 역시 구조 현장 접근이 차단됐고, 이들의 말은 언론에서 배제됐다. 세월호 유가족 역시 시간이 갈수록 언론과 정부로부터 배제당했다. 그리고 국민 여론에 밀려 만들어진 진상규명을 위한 기구는 정부에 의해 무력화되었다. 왜 그랬을까?
세월호 사태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모 정치인 아들이 세월호 사태에 항의하는 유족들을 시체 장사나 하는 미개인이라는 투로 비난했다가 크게 곤욕을 치렀다. 물론 모 정치인은 아들이 실수한 거라고 눈물을 흘리며 사과했다. 한데 그 직후 그의 부인이 억울하다는 투로 아들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해서 또 문제가 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총리 후보가 '한국 사람은 게으르고 미개하다. 그러니 일제의 지배를 받은 건 하느님의 뜻이고 6.25 동족상잔을 겪고 미국을 만난 건 하느님의 축복'이라는 투의 발언을 한 게 문제가 되어 낙마했다.
이 정도 되면 '진심은 농담이나 말실수를 통해 드러난다'는 프로이트의 지적이 아니라도 그들의 발언이 진심을 드러낸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도대체 우리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보수 엘리트들은 국민을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그들이 생각하는 역사란 도대체 무엇일까?" - 책 속에서-
세월호 참사, 잠시라도 비아냥댔다면 이 책 꼭 읽어야
12권을 제외한 나머지는 오롯이 교사와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의 꿈이 무겁지 않은 언어로 소개됐다. 사실은 그래서 더 슬프다. 가수를 꿈꾸는 소녀 이야기에 빠져 잠시 웃음 짓다가 제정신을 차리자 "그 꿈을 지켜 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는 말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민지가 가수 오디션을 보고 싶다고 했을 때 친구들은 매니저를 자처하고 나섰다. 혜선이는 평소 자신의 패션 감각을 부러워한 민지를 위해 옷을 빌려주고 오디션에 낼 프로필 사진을 찍어 주었다. 학교 빈 음악실에서 민지를 위해 피아노로 음을 짚어 주기도 했다. 윤정이와 재은이도 화랑 유원지에 가서 민지가 맘껏 소리를 질러도 부끄럽지 않도록 함께 있어 주었다." -책 속에서-
이런 내용이 <짧은, 그리고 영원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읽다 보면 아이들의 꿈을 어째서 잊지 말아야 하는지, 세월호 참사를 왜 오래도록 기억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이 책이, 희생자 가족에는 따뜻한 위로가, 세월호 참사를 가슴 아파한 이들에는 기억의 징검다리가 되리라 본다.
또한, 세월호 참사 희생자나 유가족에게 잠시라도 비아냥거리는 마을을 가졌던 사람들에게는 자신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모티브가 되리라 조심스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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